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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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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지키는 마음 사재기는 안 돼요

가격 오르고, 노점 사라지고, 대기줄 길어지고
‘슈크림’에 ‘매코미’ ‘카레’까지… 다양하고 귀해지는 붕어빵
등록 2022-12-17 13:16 수정 2022-12-17 23:59
팥, 슈크림, 매운 배추 등 붕어빵 속에 세가지 재료가 들어 있다. 류우종 기자

팥, 슈크림, 매운 배추 등 붕어빵 속에 세가지 재료가 들어 있다. 류우종 기자

2022년 12월13일 눈 내리는 오후 2시, ‘효공잉어빵’ 트럭 앞에서 손님 16명이 줄지어 기다렸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에서 골목으로 올라가는 길모퉁이에 교복 입은 학생, 할머니 손잡고 나온 유치원생, 혼자 나온 할아버지,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 20대 커플까지 다 모였다. 추위에 떠는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트럭에는 ‘1인당 최대 6천원까지만 판매한다’는 안내 문구가 붙었다. 붕어빵 사재기를 막기 위함이다. 30여 분이 지나 눈발이 거세지자, 기다리던 할머니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온 20대 커플도 보였다. 이들은 호캉스를 즐기러 온 김에 붕어빵을 사러 들렀다. 박소현(26)씨는 “어제도 오후 3시에 왔는데 40분을 기다리다가 예약해둔 식당을 가야 해서 돌아갔다”며 “인스타그램에서 매콤붕어빵을 본 뒤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도 찾아왔다”고 말했다.

중학생 김아무개(16)양은 3천원을 꺼내 가슴팍 앞에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김양 앞에 손님 2명이 줄 서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 자리에 붕어빵이 있었다. 그땐 3개에 1천원이던 붕어빵이 이제는 2개에 1천원이다. 저번에 학교 끝나고 왔지만 못 먹고 돌아갔다. 오늘은 시험이라서 끝나고 빨리 왔다.” 이렇게 말하는 김양의 가방에 붕어빵 인형이 달려 있었다.

20여 년간 붕어빵을 팔아온 ‘효공잉어빵’ 사장 김종복(67)씨는 말없이 앉아서 붕어빵을 구웠다.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장사가 끝나는 저녁 7~8시가 되도록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일한다. 화장실에 가야 할까봐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가 손님에게 하는 말은 두 마디였다. “다음 손님이요.” “어떻게 담아드릴까요?”

2022년 12월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역 근처 붕어빵 노점 앞에 붕어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류우종 기자

2022년 12월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역 근처 붕어빵 노점 앞에 붕어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류우종 기자

효창공원역 앞에서 20여 년간 붕어빵을 팔아온 ‘효공잉어빵’ 사장 김종복씨가 묵묵히 붕어빵을 굽고 있다. 류우종 기자

효창공원역 앞에서 20여 년간 붕어빵을 팔아온 ‘효공잉어빵’ 사장 김종복씨가 묵묵히 붕어빵을 굽고 있다. 류우종 기자

50분 기다려 산 붕어빵

50여 분 기다려서 붕어빵 13개를 샀다. 1인당 살 수 있는 한도에 맞춘 6천원어치였다. 팥앙금 붕어빵 5개에 2천원, 슈크림 5개에 2천원, 매코미 3개 2천원이다. 겉이 노릇노릇하게 탄 구석 없이 구워진 붕어빵이었다. 붕어빵 꼬리부터 먹자 바삭한 소리가 났다. 팥앙금의 온도는 적당해서 붕어빵을 먹었을 때 입천장이 델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 먹어본 매코미붕어빵에선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산뜻한 김치맛이 느껴졌다.

올겨울 유난히 붕어빵이 인기다. 길을 걷다 붕어빵 노점을 보면 적게는 5명, 길게는 10여 명이 줄지어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붕어빵 파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

붕어빵 가격도 올라 ‘금붕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붕어빵 가맹점을 운영하는 ㄱ씨는 “(2021년에 견줘) 가격이 밀가루는 80% 올랐고, 콩기름은 2배 올랐고, 프로판가스도 70% 오르고, 팥은 30~40% 올랐다”고 말했다. 2022년 12월14일 한국물가정보를 보면 붉은 팥(외국산)은 800g당 평균가격이 6천원으로, 2021년 5천원보다 20% 상승했다. 밀가루 가격 역시 급등해 1㎏ 기준 1880원으로 2021년에 견줘 18.2% 올랐다.

이제 한 개에 1천원 하는 붕어빵도 흔히 볼 수 있다. 12월14일 오후 붕어빵을 찾아 헤매다가 애플리케이션(앱) ‘가슴속3천원’이 붕어빵이 있다고 알려준 카페에 들어갔다. 이 카페에서 파는 붕어빵은 2개에 1900원이었다. 크기는 노점 붕어빵의 절반가량. 최근 인기를 끄는 ‘가슴속3천원’은 가까운 곳에 있는 푸드트럭과 길거리 음식 위치를 알려주는 앱이다. ‘가슴속3천원’은 12월14일 기준 앱스토어 인기 순위 50위다. 카카오톡(49위), 유튜브(56위)와 비슷하다. 붕어빵을 찾는 사람들 마음의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가슴속3천원’ 마케터 윤다영씨는 “겨울이 되면 에스엔에스(SNS)를 중심으로 자연적으로 바이럴(입소문)이 많이 일어난다. 트래픽이 올라가고 앱 다운로드 수도 늘고 있다”며 “연예인들도 붕어빵이 먹고 싶다며 앱을 언급해준다”고 말했다.

붕어빵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ㄱ씨는 “사람들이 붕어빵이 비싸졌는데도 줄 서서 먹는다. 특이한 현상이긴 하다”며 “코로나19가 심한 2년 동안 붕어빵이 사라져서 (올해 유난히) 반짝인기가 있는 건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효공잉어빵’ 김종복 사장은 “(붕어빵이) 제일 만만한 겨울 간식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 1천원에 2개나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가 많지 않다”며 “호떡만 해도 1개에 1500원이나 2천원이다. 최근에 손님이 더 많아졌다. 손님이 많아진 것은 2~3년 전부터였다. 매해 손님이 늘어나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네이버 웹툰 <대학일기> 66회 ‘겨울 간식’ 편에 달린 댓글들.

네이버 웹툰 <대학일기> 66회 ‘겨울 간식’ 편에 달린 댓글들.

‘가슴속3천원’ 앱의 검색 화면.

‘가슴속3천원’ 앱의 검색 화면.

카페에서 파는 2개에 1900원짜리 붕어빵. 노점 붕어빵의 절반 크기다. 이정규 기자

카페에서 파는 2개에 1900원짜리 붕어빵. 노점 붕어빵의 절반 크기다. 이정규 기자

고소한 냄새에 이끌리듯

붕어빵이 주는 추억과 감성을 좋아한다는 이들도 있다. 하예지(33)씨는 “유치원 때부터 겨울에 엄마나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길에 붕어빵을 사오곤 했다”며 “나이 들어서도 겨울에 트럭이 지나가면 밀가루 반죽이 구워지는 그 고소한 냄새에 이끌리듯 사서 먹었다. 따끈하고 달달한 팥앙금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은실(34)씨는 “어릴 때는 붕어빵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다”며 “30대가 된 뒤 어릴 적 간식이 주는 감성이 생각났다”고 했다.

붕어빵은 여러 재료로 변주하며 다양한 입맛의 소비자를 사로잡고 있다. 슈크림부터 김치, 고구마, 치즈, 카레, 피자 등 다양한 재료가 붕어빵에 들어간다. 12월14일 저녁,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끄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고구마붕어빵’을 먹으러 갔다. 자색 반죽에 고구마맛 앙금을 넣은 붕어빵이었다. 달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었다. 슈크림은 느끼해서 싫고 팥 특유의 쓴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오후 5시쯤인데도 5명이 줄을 섰다. 30분 뒤 붕어빵 장사가 마감됐다. 기다리다가 붕어빵을 사지 못하고 돌아선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색 붕어빵 가운데, 근본이 되는 팥붕어빵과 겨룰 수 있는 붕어빵은 슈크림붕어빵이 유일하다. 네이버 웹툰 <대학일기> 66회 ‘겨울 간식’ 편 댓글을 보면, 12월15일 기준 팥붕어빵파와 슈크림붕어빵파가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슈크림은 28만2119표, 팥은 28만1262표. 근소한 차이다.

‘효공잉어빵’에서 붕어빵을 사기 위해 기다리던 할머니가 눈발이 거세지자 머리에 비닐을 뒤집어썼다. 이정규 기자

‘효공잉어빵’에서 붕어빵을 사기 위해 기다리던 할머니가 눈발이 거세지자 머리에 비닐을 뒤집어썼다. 이정규 기자

슈붕-팥붕, 누가 이길까

붕어빵 인기가 늘어난 만큼 붕어빵 가맹 문의도 많아졌다. 붕어빵 가맹점 사업을 운영하는 ㄱ씨는 “붕어빵 창업 문의가 코로나19(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뒤 대폭 늘어났다. 코로나19 확산 3년 동안 길거리 붕어빵 노점이 다 무너졌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문의 수가 10배 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붕어빵의 높아지는 인기만큼 붕어빵을 많이 팔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노점 단속이 심해서다. 붕어빵 노점 장사를 했던 이연빈(31)씨는 붕어빵 장사를 다시 하려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넉 달간 붕어빵 장사를 할 때 민원으로 다섯 번가량 노점을 옮겼던 기억 때문이다. 이씨는 “사람들이 삭막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민원이 들어와 붕어빵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며 “노점상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 인근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ㄴ씨도 건물주에게 떨어지는 잎을 치운다는 조건으로 겨우 자리를 얻었다. 그는 가게가 소문나면 민원이 들어와 쫓겨날 수도 있다며 언론 취재를 거절했다.

매번 쫓겨나는 운명을 맞는 붕어빵 노점과 다르게 10여 년간 한자리를 지켰던 ‘효공잉어빵’만의 비밀이 있다. 사장 김종복씨는 다리를 잘 쓰지 못한다. 지체장애 3급을 받았다. 아내가 벌어준 돈으로 생활하다가, 양팔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 사연을 안 지역주민들은 김씨가 동네에서 장사할 수 있게 배려했다. “동네 사람이 도와주고 구청에 이야기해줘서 이 자리에서 한 거지, 도로변에서 하면 다 쫓겨난다.”

김씨는 100원, 500원 동전이 들어오면 모두 모아 주민센터에 기부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었다. 떼돈 버는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도움을 받아서 이만큼 성장했으니까.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빌라 한 채를 장만했다.”

김씨는 붕어빵 재료 가격이 올라도 2천원에 팥붕어빵 5개를 내놓으려 한다. 이 가격은 그가 정한 게 아니라 손님으로 오는 학생들이 정해줬다. “요즘 강남에는 1개에 1천원 하는 붕어빵도 있다던데…. 학생들이 2천원에 5개면 좋다고 말해줬다. 힘들어도 가격은 손님이 정해준 대로 간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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