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문학주간 2022’(11월7~11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행사에서 현직 작가와 인공지능(AI)이 함께 글을 써 엮어나가는 일련의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인공지능이 소설과 시를 쓸 수 있다는 소문은 무성하다. 그런데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레벨에서 협업이 가능할까. 윤고은 소설가와 진행한 ‘AI와 함께 소설 꺾꽂이하기’ 시간에 작가의 소설 <밤의 여행자들>의 일부 대사를 가져와 인공지능이 다르게 쓰도록 해봤다. 아직 하자가 많은 인공지능이라 현장에서 잘 작동할지 두려웠다.
고가의 여행상품을 파는 주인공 요나가 동행 예정인 파트너의 죽음으로 고객이 환불을 요구하자 “환불은 본인 사망시에만 가능합니다”라고 대답하는 내용 다음을 인공지능이 이어 쓰도록 했다. 파트너가 숨졌는데도 조치가 불가하고 오로지 신청자 본인이 죽어야 환불할 수 있는 비정한 상품을 요나는 팔았다. 이는 나중에 “퇴직은 본인 사망시에만 가능합니다”라고 요나가 변주되어 듣게 되는 아이러니한 말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처음 실제 보험약관과 같은 가짜 문장을 생성했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다소 엉뚱해졌다. ‘죽은’ 파트너가 여행사에 와서 신청자가 죽으면 환불이 가능하다는 대답을 듣고 가는 장면을 썼다. 잠재적인 스토리의 전개 영역을 인공지능으로 탐색하자 소설은 이본으로 넘어갈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어 곧 출간될, 개가 주인공인 작품 설정 일부를 제공했다. 인공지능은 식탁에서 개가 인간에게 대뜸 “앉아봐”라고 반말하고, 인간이 개에게 “당신이 혀로 작품을 그리는 방식이 좋아요”라고 아첨하는 소설을 생성했다. 부조리하지만 풍자적인 대화였다. 작가는 놀라워하며 보조작가로 삼아야겠다고 말했다. 인간 간 대화가 이야기를 촉진하듯, 기계와의 대화 속에서 풀리지 않던 아이디어가 풀릴 것 같다면서.
김언 시인과 권보연 교수가 진행한 ‘AI와 함께 시 조각하기’ 시간에는 김언 시인의 10년 전 일기 사흘치를 설정값에 넣고, 그가 10년 후 현재에 쓸 법한 일기를 생성하는 실험을 했다. 13일째 일기에 인공지능은 “시인은 자연을 인간에게 번역해줄 의무가 있다”고 썼다. 이후 인공지능은 명령이 없는데도 14일, 15일, 16일째의 일기를 생성하며 폭주하더니 시인에게 “앞으로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는 시인이 되겠습니까?”라며 맹세를 요구했다. 거절하기 어려운 맹세를 요구받은 시인은 “네”라고 입력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김수영문학관에서 인공지능 기반 문장 실험을 하던 중이었다. 관객이 “쓰레기봉투로 공포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겠죠?”라고 도발했고, 이에 기계가 이야기를 생성했다. 도시 뒷골목의 쓰레기봉투가 인간을 삼키는 내용이었다. 개연성은 없지만 섬뜩한 느낌이었다. 관객은 쓰레기를 과다 생산하는 인간에 대한 미물의 반격이라며 만족해했다. 사실 기계는 인간이라면 상식과 편견 때문에 이어보지 않았을 존재와 상황을 인공신경망으로 시험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개가 반말하고, 기계가 인간에게 맹세를 요구하고, 쓰레기봉투가 인간을 삼키는 등 일상에 균열이 일어나는 시적인 순간이 벌어졌다.
이날 가장 흥미로운 시적 순간은 따로 있었는데, 김언 시인이 맹세하자 건물 안 소화전이 오작동해 관객 50여 명이 급히 탈출했다. 놀라고 두려운 마음으로 건물 밖으로 관객들을 해산시키며 내가 경험한 것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의심했다. 최근 내 마음을 흔든 건 인간이 아니라 기계였다. 기계가 나의 예술적 멘토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오영진 테크노컬처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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