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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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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북서에서 바람이 분다, 집에 가자

자연에 가까워지고 대기에 가까워지는 법 <날씨의 세계>
등록 2022-12-04 16:27 수정 2022-12-08 00:51

1777년 1월 미국의 조지 워싱턴 군대는 포지계곡 앞에서 영국의 대규모 병력에 포위됐다. 그날 오후 바람이 북서쪽에서 불어왔다. 조지 워싱턴은 무르고 질척한 길로 군사를 이끌고는 무사히 탈출한다. 이 ‘날씨 추리물’에 감춰진 것은 이렇다. 북서쪽에서 불어온 바람은 날씨가 추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른 땅이 단단히 얼어붙을 것이다. 날씨일지를 꼼꼼하게 썼던 워싱턴은 이 습관 덕에 역사를 바꾸는 모험을 감행해 성공할 수 있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모든 바람은 고유의 날씨를 지닌다”고 했고, “바람의 세기는 방향을 남에서 북미서(북과 북북서 사이)로 돌릴 때 가장 강력”해진다. 텔레비전 기상캐스터는 기단의 움직임과 장마전선의 방향을 지도 위에 펼쳐 보이지만, 그것이 ‘내일의 날씨’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날씨의 세계>(트리스탄 굴리 지음, 서정아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는 구름, 온도, 바람, 노을, 이슬 등 날씨의 ‘징후’를 읽는 법을 추리물처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지구는 동쪽으로 자전하기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람이 분다. 그래서 날씨 역시 대체로 서쪽에서 다가온다. 오늘이 금요일이고, 고기압 중심부가 서쪽에 있다면 주말에 계획한 피크닉에는 좋은 날씨가 함께할 것이다. 춥고 서리가 내리는 날 야외에서 따뜻한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의외로 그늘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어두운 색깔의 공간이다. 하얀색은 빛을 반사하고 검은색은 빛을 흡수한다는 건 상식인데도 우리는 엉뚱한 곳만 찾아다녔다. 캠핑할 때 이슬이 적게 내리는 장소를 찾는 법, 해변에서 모래가 씹히지 않는 장소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법 역시 “열과 공기와 물로 이뤄진 수프”인 날씨의 비밀을 풀다보면 알 수 있다.

휴대전화 속 날씨가 아니라 생활 속 날씨를 감지해나가려면 오감을 열고 자연을 관찰해야 한다. 어디서 바람이 불어오는가, 겨울의 해는 어디까지 닿는가, 어제의 노을은 무슨 색인가, 구름은 솟았나 퍼졌나. 평소 바람을 관찰하는 법은 이렇다. 바람의 방향을 구분하기 위해 기준점으로 ‘시각적 돛’을 만들어놓는 게 좋다. 그리고 지금의 바람을 관찰해보자. 근처의 탁 트인 공간을 찾아가 가만히 눈을 감아보자. 강력한 감각인 시각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뺨 위로 바람을 느껴보자. 얼굴을 돌리며 뺨 위로 똑같은 바람이 느껴지는 때 눈을 떠보라. 그 보이는 곳이 바람의 방향이다. 바람을 느껴라, 실눈을 떠라.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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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의 종말

제시카 노델 지음, 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만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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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담배 피우는 게 혁명이던 시절이 있었다. 시비 거는 남학생들과 패싸움이 나고 경찰에게 따귀를 맞았다니 말해 무엇하랴. 혁명을 하다가 담배와 끊지 못하는 사랑에 빠졌다. 결혼식날 흰 장갑을 벗고 식전 담배를 피우다, 결국 장갑 없이 신부 입장을 했다. 18년 만에 재출간된 27년간 연기를 사랑해온 작가의 연애(煙愛)담.

오웰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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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아니라 조지 오웰이다. <1984> <동물농장>의 작가 오웰은 새로 만든 자신의 정원에 장미와 과일나무를 심었다. 리베카 솔닛은 스페인 내전, 독일의 폴란드 침략 등 전쟁의 시대를 산 오웰이 일상적인 즐거움을 길어낸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빵만이 아니라 장미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건 극단적 시대를 살아가는 2020년대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다.

복지의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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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을 전후해 시장이 소득을 분배하는 기능 ‘낙수효과’는 거의 사라졌다. 소득의 성장과 분배가 시장에서 이뤄진다는 건 낡은 생각이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가 얽힌 한국의 복지 과제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 가난 구제는 국가가 할 수 있다, 나라에 돈이 없어도 복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신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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