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4년째 이 밭을 쓰는 우리는 이 땅의 단점을 잘 안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는 것. 폭우가 내릴 때마다 우리 텃밭에서도 얼마나 많은 작물이 죽어나갔던가. 흙이 딱딱해 두둑을 충분히 쌓기 힘든데다 우리는 비닐 멀칭을 하지 않아 비가 올 때마다 애써 쌓아올린 두둑이 파이고 깎여나갔다. 거기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면 밭고랑과의 경계가 흐려져 농사를 망치기 딱 좋다.
그래서 늘 ‘틀밭’(Raised Bed)을 만들고 싶었다. 밭에 틀을 설치해 흙을 높이 쌓아올리면 두둑처럼 쉽게 무너지지도 않고, 그 안에는 다른 흙을 섞어 쓸 수도 있다. 또 틀 안을 밟을 일이 전혀 없으니, 토양의 공기층이 빠져 물빠짐이 잘 안 되는 상태를 악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다음해에 갈아엎을 땅에 그만한 투자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제는 두고두고 내가 쓸 수 있는 땅이 생겼으니 틀밭을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틀밭을 만들더라도 언덕은 가만히 두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우리는 평지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친구들을 초대해 바비큐를 해 먹고, 때로는 돗자리를 펼쳐 피크닉 분위기도 내고…. 머릿속에서 온갖 행복회로를 돌려가며 ‘콜로세움’ 스타일을 만들기로 했다. 언덕에 층을 내어 틀밭을 세우겠다는 뜻이다. 기성품으로 나온 틀밭용 나무키트도 있지만 지출을 줄이겠다며 굳이 폐팔레트 50장을 트럭으로 받아 건설을 시작했다. 동시에 예상치 못한 고난과 지출이 펼쳐졌다. 톱질 몇 번에 나가떨어진 남편은 전동 원형톱을 샀고, 핸드드릴도 집에 있는 가정용보다 더 강력한 사양이 필요해 결국 또 사야 했다. 우린 틀밭만 필요했는데 틀밭을 만들기 위한 장비가 계속 늘어나니 창고도 필요해졌다! 장비와 높이 쌓인 팔레트, 엄청난 양의 폐기물과 흙포대까지. 어느덧 밭은 건설현장이 돼 있었다.
텃밭을 일구는 일은 늘 나를 설레게 하지만 이때는 정말 반은 미쳐 있었다. 뭐든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땅에, 치우지 않으면 성에 안 차는 쓰레기까지! 나를 미치게 하는 긍정적 부정적 요소 모두가 갖춰져 아침에 일을 시작하면 밥 생각도 나지 않았고, 해가 지고 깜깜해져서 도저히 작업할 수 없을 때가 돼서야 집에 돌아갔다. 그렇게 꼬박 한 달 동안 각 언덕에 2층, 3층으로 틀밭을 건설했다. 전동톱과 핸드드릴을 제외하면 삽과 호미를 쥔 맨손으로 말이다!
틀 안은 다양한 유기물을 층층이 쌓는 방식인 ‘휘겔쿨투어’(Hügelkultur·두둑경작)를 응용했다. 가장 아래층에 상자를 깔고 묵은 돼지감잣대와 깻대도 두둑이 쌓은 층위에 음식물쓰레기로 만든 퇴비를 더해 상토를 부었다. 휘겔쿨투어는 물과 퇴비를 주지 않아도 좋은 두둑을 만드는 방식이지만 나는 당장 흙도 아껴야 했기에 더 열심히 긁어 넣었다. 그래도 상토는 많이 필요했다. 그나마 여기가 서울이 아닌 인천이라 근처 농협 농자재센터에서 값싼 상토를 구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상토를 20포대씩 추가로 사러 갈 때마다 농협 직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대체 주말농장 하는 사람들에게 이만한 상토가 왜 필요한지 재차 물었다.
온갖 지출과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못난이 틀밭은 소셜미디어 속 틀밭정원처럼 깔끔한 모습도 아니고 콜로세움처럼 멋지지도 않다. 하지만 작물을 심고 풀이 자라니 제법 그럴싸한 모습이다. 게다가 올해 반복되는 가뭄과 폭우에도 습기에 약한 ‘보리지’마저 흐드러지게 키우며 작물들의 든든한 보금자리가 됐다. 기쁘지 아니한가!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박기완 경남 밀양의 농부(예정)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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