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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의 ‘시간’ 활용법

김학선의 <24시간 시대의 탄생>
등록 2022-10-22 08:29 수정 2022-10-24 02:05

바쁘다. 바빠도 너무 바쁘다. 습관처럼 밤을 새우고, 동이 트기도 전에 집을 나선다. 새벽 5시30분에 겨우 원고 마감을 하고 곧장 학교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노라면, 이게 사는 건가 싶다. 4세대 아이돌이 가요계를 점령한 지 오래건만, 어째선지 10여 년 전에 나온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만 자꾸 흥얼대게 된다. 이 노래, ‘노동요’로 쓰라고 만든 게 아닐 텐데….

24시간이 모자란 지금, 서가에서 우연히 김학선의 <24시간 시대의 탄생>(창비 펴냄)을 발견하곤 홀린 듯 뽑아들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고 약간 당황했다. 이런 유의 제목에 으레 기대되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사회 이야기가 아니었던 탓이다. 이 책의 관심사는 그보다 근본적인 지점, 그러니까 ‘한국인은 언제부터 24시간을 오롯이 누리게 되었는가?’에 있다. 지은이는 1980년대에 주목한다. 온갖 에너지가 넘치듯 끓어오르던 시기, 전두환의 신군부가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조율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시간’을 적극 활용했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야간통행금지제도 철폐다. 1982년 1월5일 자정부로 멀게는 조선시대, 가깝게는 광복 이후부터 계속된 통금이 해제됐다. 바로 전년인 1981년 유치가 결정된 서울올림픽을 의식한 결과였다. 새롭게 얻은 심야 네 시간은 대부분 노동과 학습에 투입됐다. 공장은 3교대 철야근무를 돌렸고, 학교는 학생들에게 ‘야간자율학습’을 강제했다. 신군부는 올림픽을 치르는 나라의 국민다운 성숙한 시민의식을 강조했지만, 이는 기실 스스로를 ‘자율적’으로 ‘규율’하라는 형용모순적 요구에 지나지 않았다.

이 규율은 그나마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적기의 관측을 방해하기 위해 모든 불빛을 차단하는 등화관제 훈련은 1980년대 오히려 강화됐다. 시민들은 그럴 거면 차라리 한국전력에서 일괄 스위치를 꺼버리라며 반발했다. 극장에서의 애국가 상영, 국기하강식, 국기에 대한 맹세처럼 국가에서 강제로 배급하는 ‘애국의 시간’ 역시 1980년대 들어 공식화·법제화됐다. 이 밖에 KBS는 1980년대 내내 격년으로 ‘국민생활시간조사’를 함으로써 국민의 일상시간을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파악하려 했다.

1980년대는 한국이 ‘세계시간’이란 이름으로 ‘미국의 시간’에 강제로 편입된 시기이자, 오랫동안 터부시되던 ‘전통의 시간’이 공식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1987년 신군부는 국민의 생활시간을 “선진 제국 시간대와 조화시켜 국제화 시대에 부응”한다는 이유로 1961년 폐지된 서머타임제를 재도입했다. 하지만 서머타임제는 올림픽 경기의 중계시간을 미국 방송시간에 맞추기 위해 시행된 ‘올림픽용’ 시간제도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고, 결국 올림픽이 끝난 이듬해 폐지됐다. 반미 감정은 물론 ‘시간주권’ 문제까지 건드림으로써 자칫 불만의 에너지가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신군부는 역시 노회했다. 음력설과 추석을 연휴로 지정해 국민의 불만을 달래는 동시에 ‘민속문화’의 계승자로 스스로를 포장했다.

물론 사람들이 신군부의 ‘시간정치’에 일방적으로 휘둘린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학생운동 세력은 서머타임제를 역이용해 밤늦게까지 시위를 이어감으로써 신군부의 골머리를 썩였다. 그렇다면 지나치게 발달한 정보통신 기술로 몇 개의 시간대를 동시에 살아내야 하는 지금은 어떻게 시간에 저항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점이, 이른바 ‘포스트-24시간 시대’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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