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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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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감자보다 짧게 산다

2022년 10월 가을, 감자된장국과 버섯쌈밥
등록 2022-10-16 00:57 수정 2022-10-16 10:34

무기력한 순간에 요리만큼 환기되는 일이 없다. 나무 도마 위에 놓인 애호박과 두부, 송이버섯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된장 푼 물을 끓이고 돌솥밥을 짓고 버섯을 굽는다. 직접 요리하면 내가 무엇을 먹을지 눈과 손으로 확인할 수 있어 안심된다. 식재료를 다듬은 손끝이 산뜻하고 도마는 향긋하다. 죽은 동물은 없다. 채식한 지 3년이 넘었다. 손질된 곡물과 식물이 각자의 속도로 익어가는 부엌에서 한 끼만큼 새로워질 준비를 한다. 냉장실에서 뒤늦게 감자를 발견하고는 사용할지 말지 잠깐 고민한다.

‘익으려면 오래 걸리는데….’

평소보다 잘게 썬 감자를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에 넣는다. 조그마한 부엌 창문에서 선선함이 불어온다.

1년도 살지 못한 생명을 먹는다는 점은 비건을 실천하기 전엔 생각해본 적 없는 사실이다. 많은 생명이 인간에 의해 사계절을 채우지 못한다.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그렇다. 소를 제외한 대부분의 농장 동물이 6개월 안에 도살되기 때문이다. 닭이 감자보다 짧게 산다. 따뜻한 깃털을 가진 부드러운 닭이 단단한 감자보다 짧게 산다.

품종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감자는 파종부터 수확까지 100일 정도 걸린다. 보통 봄에 심어서 장마가 오기 전에 캔다. 닭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35일(한국 기준) 동안 사육된다. 감자에겐 봄과 여름이 있지만 닭에겐 계절이 없다. 밤낮을 알 수 없는 좁고 냄새나는 실내에서 유전자와 환경의 조작으로 자연 속도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치킨은 닭튀김이라기보다 덩치만 큰 ‘병아리’ 튀김이다. 품종 개량되지 않은 닭의 병아리는 성체가 되기까지 5개월이 걸린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성장에 필요한 5개월을 5주로 줄였다. 한국에서만 매월 9천만 마리가 넘는 닭, 아니 병아리가 생후 2개월에 접어들면 고기로 죽는다. 불호 없는 식재료로 취급당하며 ‘1인 1닭’은 훈장처럼 전시된다.

젓가락으로 감자를 찔러보니 부드럽게 푹 들어간다.

다시는 기념하지 않을 결혼기념일을 모르는 척 흘려보내며 준비한 한 끼. 자작하게 오래 끓여 구수한 감자된장국 한입, 기름에 잘 구워 노릇해진 버섯을 짭짤한 막장과 함께 깻잎에 싸서 크게 한입 가득 넣고 씹으니 혼자서도 참 열심히 차려먹는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이혼한 뒤로 가을을 타지만 가을이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스스로를 대접하는 힘이 찌뿌둥한 무기력을 훌훌 털어낸다.

초식마녀 비건 유튜버 @tozeetoon

*비건 유튜버 초식마녀가 ‘남을 살리는 밥상으로 나를 살리는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4주마다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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