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말이 앞선다.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이 넘친다. 올해 3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반년 동안 이런저런 곳에서 강연하며 먹고살았다. 문학에 대해, 시에 대해 사족을 덧붙이며 전국을 떠돌았다. 오랫동안 시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 물음 앞에선 늘 막막했다. 팬데믹과 전쟁, 그리고 기후위기를 살아내며 무력감에 시달렸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미루다 펑크를 내기 일쑤였다. 멈춰야 할 때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맥락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곁이 되어준 음악이 있다.
이승윤(사진)의 음악을 처음 들은 곳은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이다. 작고 문인을 기념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연출할 때였다. 그는 고(故) 김경린 시인의 <국제열차는 타자기처럼>을 노래했다. 무대에서 마음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말하지 않고도 마음에 닿는 게 음악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말하는 편이었고 그는 듣는 편이었다. 그의 음악은 섣불리 단정 짓지 않고 계속 회의(懷疑)한다. 함부로 이해하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노래할 뿐이다.
부산 광안리 모래사장에 앉아 길게 뻗은 대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적이 있다. 찰나의 기쁨과 오래된 슬픔이 파도에 일렁였다. 인간은 슬픔의 힘으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사라질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것처럼, 실패할 걸 알면서도 시를 쓰고 노래하는 것처럼.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릴 우리는 마지막까지 ‘나’로 남을 것이다.
‘미래’라는 단어를 곱씹으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어느 출판사 면접에서 마지막 질문으로 “10년 뒤 당신은 무얼 하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머릿속이 까매졌다. 당시 나는 서울 답십리역 앞 작은 원룸에 살고 있었다. 몇 달치 월세가 밀린 상태였다. 열심히 일했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 곤경에 처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 10년 뒤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반복되는 일상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변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이승윤이 열일곱 살 때 지은 <흩어진 꿈을 모아서>는 서른세 살 끝 무렵 친구들의 목소리와 함께 세상에 나왔다. 그는 마이크 앞에 서서 “희망이라고” 노래하는 친구들을 숨죽여 지켜봤다. 거리에서 노래하던 이승윤이 올림픽홀 무대에 섰을 때 첫 전주가 흐르고 관객의 환호가 터져나온 그때, 희망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모양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승윤의 앨범 《폐허가 된다 해도》는 이 세상을 비관하지만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다. “사람 구실이 대관절 뭔지 말해봐”(<구름 한 점이나>) 하고 물으며 무엇도 나를 대변할 수 없다고 외친다. 나는 종종 한 점의 얼룩 같았다. 나라는 얼룩을 미워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승윤의 앨범은 듣는 이에게 끝까지 살아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마치 살아 있음의 의미는 살아 있다는 것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미래가 ‘앞으로 올 때’라면 내게 무엇이 앞에 올지 모르지만, 모르는 걸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시를 쓰고 노래하며 미지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는다.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든 가능하다. 음악에 관해 얘기하다보면 늘 나와 만난다. 음악을 듣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나는 친구들의 음악을 들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폐허가 된다 해도> 이승윤
최지인 시인
*최지인의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인 최지인의 노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최 시인은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동인 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를 펴냈고 창작동인 ‘뿔’과 창작집단 ‘unlook’(언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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