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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채에 깃든 뜻 아시나요

먹거리로 본 한반도 빅 히스토리 <권은중의 청소년 한국사 특강>
등록 2022-06-27 00:03 수정 2022-06-27 11:12

46억 살 지구에 처음 생명이 나타난 것은 약 38억 년 전.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원을 섭취해야(신진대사) 산다. 생명의 역사는 음식의 역사이기도 하다. 자신이 나고 자란 땅에서 나온 음식이 몸에 가장 잘 맞는 건 자연의 이치다. 음식은 사람과 문화의 교류에 따라 변화하고 다양해진다. 20년 동안 기자로 일했던 음식 인문학 저술가의 신간 <권은중의 청소년 한국사 특강>(철수와영희 펴냄)은 부제 그대로 ‘음식으로 배우는 우리 역사’다. 선사시대부터 19세기 조선 말까지 시공간 여행을 쌀·나물·김치·만두·홍어·고추 등 21가지 음식 이야기로 풀어낸 ‘한반도 빅 히스토리’다.

수십만 년 전 석기시대, 바다는 풍요의 원천이었다. 1만4천 년 전까지 육지였다가 바다가 된 한반도 갯벌은 산소투과율이 높아 수백 종의 동식물을 품은 생명의 보고다. 갯벌이 없다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도 없고, 전통 소금(자염)으로 만드는 구수한 된장이나 젓갈 등 염장발효식품도 없었을 테다.

1만2천 년 전부터는 농경이 본격화했다. 먹거리가 풍부한 곳에 강력한 왕권이 탄생하고 국가가 성장했다. “한해살이풀이 수백 년 가는 국가를 만들었다.” 볏과 식물(벼·밀·옥수수) 중에서도 쌀은 부드러운 식감과 뛰어난 영양, 높은 생산성 덕분에 귀한 대접을 받았고, 삼국시대 들어 우리 밥상의 주인공이 됐다.

인류가 가장 많이 키우는 가축은 닭이다. 1년에 먹어치우는 닭이 500억 마리다. 닭이 단순한 먹거리만은 아니었다. 고대사회에서 새 숭배는 일반적이었다. 동명성왕(고구려)·박혁거세(신라)·김수로왕(가야) 등 많은 건국 시조가 알에서 태어났다. 현대사회 들어 닭은 신화에서 내려와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 됐다.

농경과 어업이 주로 남자들의 몫이었다면, 요리는 여성이 주도했다. 육류는 비싼 고급요리였던 반면, 채소는 국토의 70%가 산인 한반도의 땅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나물 요리가 발달한 데는 여성들의 지혜가 담겼다. 고려 말, 유목민족 몽골의 침략과 만두의 전래는 육식을 꺼리던 불교국가였던 고려의 밥상에 고기가 오르는 계기가 됐다. 이는 “우리 음식사에서 임진왜란 이후 고추의 보급과 함께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한반도는 “호남에만 풍년이 들면 조선 팔도가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풍요로웠지만, 근대 이전까지 백성 대다수는 굶주렸다. “문제는 정치시스템이었다.” 맛깔스러운 탕평채는 실은 지긋지긋한 붕당정치에 질린 영조가 화합을 꿈꾸며 고안한 음식이었다. 장터국밥은 조선 후기 상업경제의 발달을 보여준다. 책은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돼 <청소년 한국사>라는 제목이 달렸지만, 성인을 위한 인문교양서로도 손색 없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시민의 한국사 1·2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돌베개 펴냄, 각 권 3만8천원

선사시대부터 2016년 촛불집회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시절까지 한국사 1만 년을 연대기로 엮은 통사. 2018년 완간한 ‘시대사 총서’(전 10권)에 이은 역작. 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를 토대로 전문 연구자 70여 명이 집필과 교열에 참여했다. 도표·지도·사진 등 풍부한 그래픽을 곁들였다.

완경 선언

제니퍼 건터 지음, 김희정 외 3명 옮김, 생각의힘 펴냄, 2만2천원

산부인과 전문의가 여성의 완경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과학적 사실과 페미니즘으로 알기 쉽게 풀어준다. 호르몬 변화에 따른 발열감·수면장애·골다공증 등 신체적 변화와 우울증·무력감 등 심리적 변화까지 새로운 현상의 원인과 처방을 설명하고, 완경 이후 당당한 새 삶을 응원한다.

오래된 기억들의 방

베로니카 오킨 지음, 김병화 옮김, RHK 펴냄, 1만9천원

아일랜드 신경학자가 ‘기억’에 초점을 맞춰 뇌과학을 설명한다. 인간의 감각 경험은 뇌에서 기억으로 축적된다. “기억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기억이 어떻게 우리의 내면을 형성하는지를 신경증 환자들의 30년 임상연구에 근거해 탐구했다.

인터넷 때문에

그레천 매컬러 지음, 강동혁 옮김, 어크로스 펴냄, 1만9천원

캐나다 언어학자가 인터넷 상용화 30년 동안 인터넷 언어의 명멸과 변화에 얽힌 사회문화 현상을 분석했다. 온라인 세상에서 통용되는 기호·이미지·동영상 등을 일컫는 밈(Meme)은 감정을 시각화해 표현한다. 비격식 언어의 실시간 진화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한계를 넘어선 혁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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