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어쩌면 ‘파친코’ 선자의 현실 삶

민족 넘은 보편성 보여주는 드라마 <파친코>,
민족 중심으로 살핀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사>
등록 2022-05-26 16:02 수정 2022-05-27 01:37
정영환 지음, 푸른역사 펴냄

정영환 지음, 푸른역사 펴냄

보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애플티브이플러스 시리즈 <파친코> 이야기다. 재미한인 작가 이민진이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한국과 일본, 미국을 무대로 한 재일조선인 4대의 대서사시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워낙 호평이 자자한지라 영상물과 친하지 않은 나도 어째 한 번은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무엇보다 한인, 혹은 조선인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민족’을 넘어선 보편성을 보여줬다는 평가에 귀가 솔깃해진다.

재일조선인 3세 역사학자인 정영환의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는 어쩌면 <파친코>와는 정반대 입장에 선 책이다. 지은이는 재일조선인 역사를 남북한을 아우르는 ‘조선 근현대사’의 일부로 다루겠다고 선언한다. <파친코>가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줬을, 재일조선인의 경계자적 성격에 주목해온 최근 연구 흐름과는 명확히 선을 긋는다. 얼핏 시대착오로까지 느껴지는 ‘민족’이란 키워드를 이토록 강하게 밀고 나가는 이유는 하나,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이 바랐던 게 일본 내에서 ‘정당한 외국인’ 대우였기 때문이다.

책은 재일조선인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결성된 최대 민족조직인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을 중심으로 재일조선인의 해방 5년사를 촘촘히 재구성한다. 해방과 함께 인민위원회의 주도로 수많은 자치결사가 만들어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조련 역시 조선인의 본국 귀환이나 노동쟁의 지원, 정치범 석방 등을 스스로 담당해갔다. 이뿐만 아니라 수도 도쿄는 물론 변경의 섬 쓰시마에 이르기까지 전 일본에 걸쳐 활동가(일꾼) 양성을 위한 고등학원과 청년학원을 설립하고 거주권과 생활권운동을 전개했다.

이처럼 재일조선인을 독립국민이자 외국인으로 자리매김하고 그들의 공적 기관으로 인정받으려 했던 조련의 노력은, 그러나 이내 흔들리기 시작한다. 1946년 2월 일본의 치안 당국은 조선인에 대한 기소권과 재판권을 탈환하며 종래 ‘해방 인민’으로 규정되던 조선인의 거주권과 본국 귀환권을 억압할 근거를 마련했다. 1947년 5월2일 제정된 외국인등록령은 조선인을 ‘일본인’이라고 해석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일본에서 추방할 수 있게끔 했다. ‘신민’인 조선인을 언제든 송환할 수 있었던 식민지기 지배 수법의 연속이자, 정당한 외국인으로 대우받고 싶다는 재일조선인의 의지를 부정한 사건이었다.

한반도 상황도 독립을 향한 재일조선인의 여정을 가로막았다. 1948년 남한 단독선거에 대한 평가는 재일조선인 사회를 분열시켰다. 같은 시기 전개된 조선학교 폐쇄령 반대운동에 미군이 고베에 비상사태선언을 발령하는 등 강경책으로 응수했던 건 제주 4·3항쟁의 영향이었다. 이후 한반도 분단이 고착화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지를 천명한 조련은 해산되고, 재일조선인은 실질적인 무국적 상태에 놓였다. 독립을 향해 투쟁하던 ‘주체’에서 일본과 남한, 북조선 사이의 ‘문제’로 전락한 것이다.

지은이는 재일조선인 문제란 곧 민족문제라는 입장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면서도, 그런 틀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조각을 성실하게 그러모았다. 그 점에서 평생 조선어를 하지 못했던 재일조선인 2세인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한, ‘동포’가 읽을 만한 책을 쓰고 싶었다는 지은이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로지 대한민국인만을 ‘우리’로 여기는 협소한 민족주의에 머무르지도, 그렇다고 간편하게 탈민족주의로 넘어가버리지도 않는 현대사 쓰기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 책은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

유찬근 대학원생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