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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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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량이 넘어가도, 오염수를 뒤집어써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원전 수습 작업자 100명의 9년간 기록 <최전선의 사람들>
등록 2022-04-28 16:36 수정 2022-04-29 01:53

15~17㎏ 텅스텐 조끼를 입은 채다. 고무장갑도 몇 켤레씩 겹쳐 끼었다. 감독이 “출발” 신호를 보내면 전력질주한다. 작업 가능 시간은 5분 내외. 완전무장한 채 마음을 졸이며 시간을 단축한대도 작업자 하루 피폭 상한인 3밀리시버트(mSv)에 근접하고 만다. 방사선과의 사투다.(일본 후쿠시마 원전 2호기 철벽 설치 작업 풍경)

재난은 다양하게 적히며, 그래야만 한다. 재난 피해자의 이야기를 적어야 한다. 엉망진창과 의도적 은폐가 뒤섞인 사고 수습 과정을 적어야 하며, 파괴된 환경과 공동체의 풍경 역시 적어야 한다. 그리고 또 적혀야 할 이야기가 있다. 책 <최전선의 사람들>은 후쿠시마 원전 수습 ‘작업자’의 이야기를 적는다. 저자인 <도쿄신문> 기자 가타야마 나쓰코는 사고 직후(2011년 3월11일)부터 9년 동안 작업자의 포부, 수고, 고통을 듣고 엮었다. 100명의 작업자 인터뷰와 취재수첩 220권이 필요했다. 비용 절감과 책임 회피를 특징으로 한 2010년대 노동 현장의 모순은 충격적인 사고 현장에서조차 다만 심상하여, 서늘하다.

이를테면 작업자의 소속은 7차, 8차 하청까지 줄줄이 얽혀 있다. 작업자도 자신이 몇 차 하청업체에 속했는지 모른다. 중간에 임금이 가로채이고 줄어들 뿐이다. 56살 베테랑 배관공 기씨는 이렇게 들어온 작업자들을 보며 “초짜들만 들어와서는” 하고 말했는데, 일감이 사라지면 떠나야 하는 하청 신세인 건 그도 마찬가지다.

하청노동자는 많은 것을 감춰야 했다. 하청기업이 일감을 놓치면 자기 일도 사라진다. 선량계(방사선량을 재는 기기)에 납을 덧대 피폭량을 감췄다. 피폭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더 일하는 게 불가능했다. “동료가 오염수를 뒤집어썼는데도 보고하지 않았다. 다음 일을 수주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하청업체에) 있다”고 익명의 작업자는 전한다. 감춰와서 산재 입증이 쉽지 않다. “(2019년까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일한 작업자 가운데 24명이 암에 걸려 산재를 신청했다. 6명은 산재 신청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3명은 취하했으며, 나머지 9명은 여전히 조사 중이라고 한다.”

작업자 이야기가 참사의 다양한 참상과 이어져 있는 건 당연하다. 작업자 상당수는 후쿠시마 주민, 재난 피해자다. 피난한 가족과 떨어져 홀로 일하다가, 멀어지고 불화한다. 사고 1년 만에 나온 일본 정부의 사고 수습 선언은 여전히 참혹한 후쿠시마를 은폐하고 평온한 바깥 세계와 구분 짓는다. 그럴수록 노동자 처우는 열악해진다. 다른 원전이 재가동될 때 후쿠시마 같은 사고의 가능성을 작업자도 염려한다. 그때는 수습할 작업자조차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불안이 책이 기록한 노동자들의 9년을 관통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덧붙는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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