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완연히 부드러워진 새벽 공기에서 오는가. 이에 맞춰 두툼한 점퍼 대신 가벼운 외투를 꺼내 드는 손길에서 오는가. 누군가는 바깥에 있다가 실내에 들어온 동료의 마스크 위 안경에 더는 김이 서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봄이 왔다고 느낄 것이며, 누군가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연인의 담대함에 놀라 “벌써 봄이로구나!”를 외칠 것이다.
나의 봄은 밭에서 비롯한다. 아직 파종하기엔 이른 지난 주말 밭으로 차를 몰았다.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 탓에 지천으로 자라 겨우내 말라비틀어진 풀을 호미로 살짝 걷어 올리다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냉이❶가 다소곳이 앉아 “제가 왔어요, 봄이 왔어요”를 외쳤다. 비록 볼품없이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어도,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호하다. 미국 등 서구 열강이 일방적으로 북한 핵에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조처가 한반도에 오기란 난망한 일이나, 시골 밭에선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봄이 당도했음을 검증하는 것이 언제든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냉이의 단짝, 달래❷를 만날 수 있다. 이 녀석은 늘 복지부동하는 냉이와 달리 늘씬한 키를 쑥쑥 뽑아 올린 채 푸릇한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있다. 도도한 생명의 욕망이 듬뿍 담긴 저 초록빛이라니….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한두 주쯤 뒤엔 간장과 참기름에 싱싱한 달래를 종종 썰어 넣은 달래장을 만들어 밥에 쓱 비빈 다음 냉이 향 가득한 된장찌개와 먹을 테다. 봄은 이렇게 후각세포와 미각세포를 타고 온다.
극강의 생명력으로 겨울을 난 쑥❸도 여기저기 머리를 내밀었다. 쑥은 너무 잘 자라는 게 탈인 녀석이다. 조금만 관심을 게을리하면 여기저기 번식해 밭을 어지럽힌다. 오죽하면 ‘쑥대밭’이란 말이 생겼을까. 개인적으로 쑥과 비슷하게 생겼으되 먹지 못하는 외래종 돼지풀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해 쑥을 먹는 건 자제하는 편이다. 쑥된장국이나 쑥버무리를 해 먹어도 맛있는데 말이다. 자연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
이제 막 움 틔우는 복숭아나무와 감나무 가지에도 봄은 왔다. 그 안엔 한낮의 햇살을 응축해 조만간 새파란 싹을 폭발하듯 틔워낼 에너지가 가득하다. 다시 그 잎들이 햇볕과 물과 퇴비의 지원을 받아 울긋불긋 꽃을 피워낼 테고 그다음엔 벌과 나비 같은 친구들 도움으로 열매를 맺겠지. 기후위기에 벌 개체수가 급속히 줄어든다는 보도를 보며 가슴이 메는 건 제아무리 얼치기 농사꾼이라도 다르지 않다. 부디 벌과 나비가 모진 겨울을 잘 나서 힘차고 우아한 날갯짓을 보여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번 대통령선거 결과는 서민들한테 봄일까? 다시 돌아가는 겨울일까? 인생은 돌고 도는 것. 그렇게나 오지 않을 것 같던 봄도 오고야 만다. 6월1일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고 내후년엔 총선도 기다린다.
글·사진 전종휘 <한겨레> 사회에디터 symbio@hani.co.kr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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