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사지어 획득한 배추, 무, 고추, 쪽파 등으로 김장 재료를 버무렸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북방 가문 ‘스타크’의 영주는 늘 읊조린다. ‘윈터 이즈 커밍’(Winter is coming). 여러 중의적 의미로 쓰이는 ‘밈’이 됐는데, 밭농사를 시작한 이후 그 얘기가 ‘김장해야 한다’로 들렸다. 텃밭의 생몰은 김장의, 김장에 의한, 김장을 위한 여정이다. 그 많은 고추를 심었던 것도 김장을 위한 것이고, 여름 지나고 후다닥 밭을 엎어 배추를 심은 것도 다 김장 때문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기어이 김장을 해내야 하니까.
포천의 겨울은 빨리 그리고 호되게 온다. 서울에서 코트를 꺼내어 입어야 하나 싶을 때, 이미 패딩점퍼에 기모바지 착장이 기본이다. 10월이면 서리가 내리고, 11월이면 바깥 수도가 얼어버린다. 빨간 고추를 따기 시작하는 늦여름 무렵부터 장모님은 앉으나 서나 김장 얘기를 했다. 고추 빛깔이 좋으면 “김장하면 얼마나 맛있겠느냐”고 했고, 한참 정지화면처럼 배추밭을 보다가 “배춧속 채워지는 게 보이느냐”고 물었다. 그게 보이지 않던 나는 ‘타임랩스’(영상 빨리 돌리기)로 배추 한 포기를 주야장천 찍어 유튜브에 올리면 조회수가 얼마나 나올까 생각했다.
사실 올해 배추농사는 고비가 많았다. 전국적으로 ‘배추무름병’이 돌았다. 잎 밑동에 반점이 생겨서 결국 배추가 썩어버리는 병이다. ‘농달’ 밭의 배추 절반이 무름병으로 쓰러졌다. 우리는 배추를 130포기 정도 심었는데 다행히 20포기 정도만 무름병이 들었다. 자연의 어떤 섭리 때문인지, 그냥 우연한 행운인지는 모르겠다. 농달은 “원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농사를 잘 지어서 그렇다”고 했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할 것이지.
무는 잘 자라지 않았다. 무청은 무성했는데, 뽑아보니 곧게 자란 무가 별로 없었다. 땅이 문제라는 의견과 모종이 아닌 씨를 뿌려 그렇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나는 속으로 어차피 채 썰거나 갈아 넣는 것인데 맛만 있으면 되지 무의 성장세가 뭐가 그리 중요한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뭣이 중한지 여전히 잘 모른다는 얘기다.
여하튼 올해는 배추, 무, 고추, 쪽파 등 김장의 알짜배기 재료를 모두 직접 농사지어 얻은 기념비적인 김장 자립 원년이다. 올해 김장 대작전은 11월 둘째 주 목·금·토, 총 사흘에 걸쳐 전개됐다. 첫날은 배추를 베고 모자란 재료를 시장에서 공수했다. 이튿날에는 마당에서 배추를 절였다. 마지막 날 3대가 모여 김장 재료를 버무렸다. 적어놓으니 너무 간단해 서운할 지경인데 그야말로 말로 하기 어려운 극한 노동이었다. 천 번쯤 앉았다 일어나야 할까. 무릎 관절을 만 번은 움직여야 할까.
엄청 일한 사람처럼 적고 있지만 사실 장모님이 다 한 일이다. 김장은 징그러울 정도로 고된 노동이자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정교한 경험이 축적돼야 할 수 있는 작업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 김치, 결혼한 이후에는 쭉 ‘장모님 김치’를 얻어먹었다. 아니 넙죽 받아먹었다. 그 힘듦, 머리로 맛으로 아는 척하다가 이제 관절로 조금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 올해 김장 맛은 어떠냐고? 끝내준다.
글·사진 김완 <한겨레> 스페셜콘텐츠부 탐사기획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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