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이건 뭐지?”
10월22일 밭에서 마지막 가을걷이를 하다 신기한 걸 발견했다. 올봄 처음으로 모종을 심은 생강을 캐려던 차였다. 생강은 집에서 감자탕이나 김치찌개 등을 끓일 때 넣거나 겉절이를 무칠 때 새우젓이나 멸치액젓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종종 쓴다. 주로 잘게 썰어 말린 뒤 분쇄기로 가루를 만들어 양념통에 담아 두고두고 애용한다. 설탕에 재운 생강을 몸살기 도는 겨울 저녁 차로 마셔도 좋다.
조심스레 뿌리 옆을 호미로 파내려가던 순간, 평소 알던 생강 마디 사이에 굵직한 뿌리가 여러 가닥 뻗어 있는 게 아닌가. 퍼뜩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외계인의 징그러운 수염 같다고 생각했다. 돌연변이 생강인가? 우리가 평소 먹는 생강이 그 식물의 뿌리가 아니었던가? 얘는 뿌리가 두 종류로 자라는 건가? 온갖 상상을 거듭하며 마치 밭에서 괭이질하다 고려청자라도 발견한 농부인 양 신중한 발굴 작업 끝에 끄집어낸 생강의 모습은 놀라웠다.
집에 돌아와 사전을 뒤적거린 결과, 우리가 먹는 생강은 뿌리가 아니라 줄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줄기가 마치 뿌리처럼 자란다고 해 학자들은 이를 뿌리줄기(근경)라고 부른단다. 마트에서 파는 생강은 기다란 뿌리 부분은 떼어내고 그 줄기만 잘라 파는데, 그 전체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우리는 ‘생강=뿌리’라는 고정관념을 갖는 것이다. 생강은 여름 동안 길이 20~30㎝ 줄기가 흙 위에 자라고 마치 댓잎 비슷하게 생긴 이파리가 열리는데, 그 줄기는 진짜 줄기가 아닌 것이다.
요리에 많이 쓰이는 대파, 쪽파, 양파는 물론이고 ‘봄의 전령사’ 달래도 마찬가지다. 즐겨 찾는 양파도 뿌리 부위를 먹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고 충격받았다. 줄기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형태라 이를 전문용어로 비늘줄기라고 한단다. 뿌리는 맨 아래 가느다랗게 실처럼 달린 부분에 그친다.
농사를 짓다보면, 이처럼 전혀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배움의 기쁨을 종종 느낀다. 우리는 늘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생산자가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원재료를 이리 만지고 저리 다듬은 뒤 내놓은 ‘최종 생산물’을 돈 주고 사는 탓에 애초 그 원재료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소외를 당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일면이다. 하지만 살면서 이런 게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기조차 힘들다. 사회현상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일부 조각난 사실만으로 섣불리 진실을 구성하려 하고, 내 믿음과 다른 사실은 쉽사리 배척함으로써 온전한 세상을 이해하길 거부한다. 특히 기자라면 이런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밭은 늘 내게 겸손함을 가르친다. 밭이 선생이다.
글·사진 전종휘 <한겨레> 사회에디터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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