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출판

과학수사는 정말 과학적일까

결백을 입증한 250명의 사례 분석 <오염된 재판>

제1366호
등록 : 2021-06-04 20:59 수정 : 2021-06-08 10:48

크게 작게

법원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별하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구제하는 최후의 보루다. 오늘날 형사재판의 대원칙 중 하나는 진범을 가리고 억울한 피해자나 범죄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증거재판주의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과학수사’다. 그러나 현실에선 과학수사와 증거재판이 되레 ‘억울한 죄인’을 확정할 위험이 상존한다.

미국 법학자 브랜던 개릿이 쓴 <오염된 재판>(신민영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은 ‘죄 없는 사람들을 유죄 판결하기’(Convicting the Innocent, 책 원제)의 실태와 이유를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한 책이다. 지은이는 미국에서 살인·강간·강도 등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유전자(DNA) 검사로 결백을 입증한 250명의 사례 분석으로 형사사법 절차의 치명적 허점을 짚고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

1993년 10월, 강간·살인 혐의로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로널드 존스는 형 집행을 눈앞에 두고 살아났다. 사건 12년 만에 주대법원이 예심법원의 결정을 뒤집고 허용한 DNA 검사에서 결백이 입증됐다. 존스는 지능이 낮은 알코올중독 노숙인이었다. 연방대법원은 존스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의 유죄 판결은 수사관이 교묘하게 세뇌해서 나온 자백뿐 아니라 ABO식 혈액형 검사, 법과학 분석관의 그럴듯한 엉터리 증언 등 과학수사로 뒷받침됐다. 재판 과정에서 결정적 유죄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오판의 덫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피해자 250명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게다가 극히 드물게 운이 좋은 경우다. “항소심 및 재심에서 DNA 검사를 원하는 기결수 대다수가 검사를 받을 수 없”고, 무죄 입증은 경찰·검사·판사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나마 운이 좋았던 250명 중 17명이 사형, 80명은 종신형이었다. 이들은 평균 13년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무죄 입증까지 평균 15년을 싸워야 했다.

한 피해자는 여성 고소자가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사실을 부모에게 감추려 허위 신고를 하는 바람에 12년을 복역했다. 이 재판의 법과학자는 단 이틀간 공개강좌를 들은 게 전부였다. 사형 선고 사건의 재판이 이틀 만에 끝나거나, 피고인이 사망한 뒤에야 결백이 밝혀진 경우도 있었다.

지은이가 책의 각 장에서 던진 질문은 현행 형사재판 시스템의 한계와 과제를 폭넓게 아우른다. 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자백하는가. 왜 피해자·목격자·제보자는 거짓 증언을 할까. 왜 과학수사는 진실을 밝히지 못했나. 왜 변호사는 무고한 의뢰인의 유죄 판결을 막지 못했나. 왜 항소심 또는 인신보호 절차는 무고한 사람을 석방하지 못했나. 왜 무고한 사람의 결백 입증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까. 지은이는 신문 및 범인 식별 절차와 법과학의 개혁, 수감자의 제보 남용 방지, 검찰과 국선변호제도 개혁 등 구조적 사법개혁의 시급함을 강조한다.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
안병진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1만6천원

미국정치학자가 ‘미국을 놓고 싸우는 세 정치세력들’(부제)의 이념과 전략을 통해 미국 정치의 향방을 가늠한다. 미국의 건국 정신을 계승하려는 토크빌주의, 문명충돌적 시각에서 백인 공동체에 집착하는 헌팅턴주의, 엘리트 체제를 넘어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데브스주의가 그것이다.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홀리 터펜 지음, 배지혜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1만7천원

여행을 즐기고 싶지만 지구를 망치는 건 싫다면? 여행 전문가인 지은이가 탄소발자국 저감, 야생동물 서식지 보호, ‘플라스틱 제로’ 짐 싸기, 여행지 공동체와 현지인들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방법 등 그동안의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게 하는 지속가능한 여행의 실질적 정보를 알려준다.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권은중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1만8천원

미식의 수도, 뚱보의 도시, 현자의 도시….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의 별명은 도시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채롭다. 20년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훌쩍 요리 유학을 다녀온 지은이의 음식 인문학 기행. 맛, 향기, 빛깔에 스며든 인문주의 전통에서 현지인 행복감의 비밀을 발견한다.

중국의 조용한 침공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김희주 옮김, 세종서적 펴냄, 2만2천원

중국의 국가 전략이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에서 시진핑 시대 들어 ‘중국몽’과 ‘대국굴기’로 바뀌었다. 미국과 함께 G2 반열에 오른 자신감이 세계 지정학과 패권 구도를 뒤흔들고 있다. 그 몸통인 중국 공산당의 ‘위험한’ 전략을 분석했다. 서구의 경계심과 별개로, 충격적 내용이 많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