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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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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만으로 마음을 열 수 없다

‘진실’ 문제에서 ‘관심’ 문제로 전환하자는 <광장의 오염>
등록 2021-05-17 01:39 수정 2021-05-20 11:17

‘광장’은 열린 공간이다. 누구나 참여해 공공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지혜를 모으는 상징적 장소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 바탕이다. 광장에 가짜뉴스와 선전·선동, 독선과 비방이 넘쳐나면 건강한 담론은 설 자리가 없다.

캐나다의 환경운동가이자 홍보 전략 전문가인 제임스 호건이 쓴 <광장의 오염>(김재경 옮김, 두리반 펴냄)은 오늘날 광장이 왜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를 조목조목 짚고 해법을 모색한 책이다. 조너선 하이트, 놈 촘스키, 조지 레이코프, 달라이 라마 등 우리 시대 최고 지식인과 사상가 26명과 만난 인터뷰가 뼈대다. 그들의 핵심 메시지는 다양하지만 결국 하나로 모인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상대의 마음에 다가가라는 것이다. “논리를 무너뜨린다고 해서 마음이 열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확실한 증거를 마주하고도 고집스러운 행동, 비합리적인 논리, 모순적인 의견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이는 사람이 ‘인지 부조화’, 즉 상이한 인식이나 믿음이 심리적으로 충돌할 때 일어나는 긴장 상태를 몹시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미국 사회학자 대니얼 양켈로비치는 ‘담론’과 ‘논쟁’의 구분을 강조한다. “논쟁이 전쟁을 벌여 한쪽이 승리하는 싸움이라면, 담론은 협력을 기울여 공익을 도모하는 활동”이다.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맞을 수 있다”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무턱대고 “당신이 옳아요”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가짜뉴스와 프로파간다, 교묘한 프레임의 덫이 광장에 횡행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발달은 역설적으로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구별하기 힘든 토양이 됐다. 그 이면에는 공공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 무지, 냉소, 전문가들을 싸잡아 무시하는 태도가 자리한다. 미국 기업의 ‘청정 석탄’이나 캐나다 기업의 ‘윤리적 기름’처럼 터무니없지만 대중의 도덕 감정을 자극하는 주장이 일부 사례다. 세상에 그런 건 없다!

사실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이는 진보와 과학을 좇는 이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이기도 하다. 프레임 이론으로 유명한 레이코프는 “보수주의자들은 정계에 나갈 때 사람들의 스위치를 건드리는 법을 공부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는 정치학, 법학, 정책학을 공부한다”고 꼬집는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기후변화 논쟁을 예로 들며, 이제는 ‘진실’이라는 이견의 여지가 있는 개념을 포기하고 ‘사실’ 문제에서 ‘관심’ 문제로 전환하자고 말한다. 대다수 논쟁은 학술적 오류가 아니라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진정한 민주주의 담론이 이뤄지려면 깨끗한 광장이 필수적”이라며, 양극화를 부추기는 프로파간다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제거하며 합리적 대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단지 피해자가 되기 싫어서가 아니라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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