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1973년)는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레즈비언으로서 시인, 페미니스트 이론가, 사회운동가로 살았던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제목이다. “나는 가격당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서 있다.” 변희수 하사의 부고를 들은 밤, 이런 시어를 찾기 위해 밤늦도록 시집들을 뒤적거렸다. ‘비통한’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다. 민주주의에서 ‘마음’의 중요함에 대해 이야기했던 파커 J. 파머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관련 내용이 주르륵 뜨는 와중에 ‘문 대통령 읽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판매량 증가’(2018년 3월16일)라는 3년 전 기사 제목이 눈에 띈다. 나직이 욕을 중얼거린다. 마음 따위, 딱딱하게 굳어져버리면 좋으련만.
직업군인으로 살고자 했던 트랜스여성. 23살로 생을 마감한 그녀가 어떤 가족 배경과 삶의 이력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지만, 문득 지금 한국 사회에서 23살이라는 나이가 소환하는 여러 주제에 생각이 미친다. 저성장과 양극화의 시대, 수저론과 공정성 논리의 세대, 청년실업과 안정된 직장에 대한 절실함….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녀에 대한 설명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소수자의 공적인 삶에는 ‘소수자로서의’ 삶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살았을 23년의 세월에 대해 상상해보려 애쓴다. 유년기는 어땠을지, 십대는 어떻게 보냈을지. 어떤 말을 들으며, 누구와 친밀함을 나누며, 자신을 어떻게 발견하며, 무엇과 싸우며 성인이 되었을지. 그 시간의 곳곳에 지뢰처럼 혹은 비수처럼 자리했을 혐오발언들도 생각해본다. 그러나 부대 동료와 상관에게서 성전환수술 과정에 대해 지지와 응원을 받았을 정도인 그의 충실한 직업군인 생활 또한 상상해본다. 대한민국 육군 누리집에 ‘부사관’은 “스스로 명예심을 추구하여 빛남으로 자긍심을 갖게 되고,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자각하면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속한 부대와 군에 기여하는 전문성을 겸비한 인재들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이 모든 단어에 충실하려 했던 변희수 하사 생전의 공적인 말들도 떠올려본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은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일이 아니라, 배우고 노력해서 하는 일이다. 누가 ‘충분한’ 인간인지,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를 둘러싸고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투쟁이 벌어졌는지를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곳, 한국 사회도 바로 그 투쟁의 현장이다.
‘국제 여성의 날’이기에인쇄돼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이 글은 ‘3·8 여성의 날’에 쓴다. 여성의 날을 기념한다는 건 “여성의 날 기념 이벤트로 여성 고객들께 증정” 같은 이벤트가 아니다. 이 체제가 ‘정상적인 여자’로 분류한 일부 여성에게 1년에 단 하루 ‘서비스’해주는 판촉과 상술을 위한 날이 아니다. 차별을 직시하고, 투쟁을 기억하고, 연대를 결의하는 날이다. 흔히 ‘세계 여성의 날’로 번역되지만 실은 세계(Global)가 아니라 ‘국제(International) 여성의 날’이고, 이날을 처음 제안한 것은 국제사회주의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다. 여자라서 받는 억압, 충분히 여자가 아니라서 받는 억압, 여자가 아니라는 말로 받는 억압. 이것들이 연결돼 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쟁이일 것이다. 차별로 인해 ‘민간인’(육군 표현)이 된, 혐오로 인해 세상을 떠난 변희수 하사의 부고는, 모든 여성과 관련이 있다.
전희경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옥희살롱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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