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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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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돕는 목격자가 되려면

성평등에 기초한 성교육 지침서 <나는 성을 가르칩니다>
등록 2020-04-05 17:14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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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말해서, 사회는 남성 시민을 길러내는 데 참패했다. 2019년도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를 보면 성폭력 범죄 피의자의 96.6%가 남성이다. 여성은 2.9%,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0.5%다. 남성이 압도적이다. 새롭지도 않은 이 통계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대다수가 너무 당연한 일은 쉽게 괄호 안에 넣어버리기 때문이다. 자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포는 성폭력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젠더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폭력이 개인 됨됨이 차원의 문제라면, 가해자 성별이 이렇게 편향적으로 한쪽에 쏠릴 리 없지 않겠는가. “성폭력과 성평등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조아라의 (마티 펴냄)는 성평등에 기초한 드문 성교육 지침서다.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로 ‘집·학교·교도소·상담실에서 해온 성교육 수업’(부제) 현장을 담았다. 장소마다 생생한 사례가 소개되고, 실제 적용하기 유효한 메시지가 일목요연 언급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최근 청소년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 시간에 감지되는 뚜렷한 변화가 있다고 한다. 남자아이들의 ‘페미 사상검증’이다. “미투 때문에 그 사람들(가해자 또는 가해 혐의자)이 죽었잖아요.” ‘나는 그런 남자가 아닌데’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당해 못마땅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가해자/피해자로만 분류되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모두가 성폭력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책은 ‘목격자 교육’을 제시한다. 범죄는 세 가지가 충족돼야 발생한다. 범죄자, 범죄 대상, 감시의 부재. 오랫동안 성폭력 예방교육은 범죄 대상에 초점을 둬왔다. 여자가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알다시피 피해자가 안 되는 방법 같은 건 없다. 요즘은 범죄자에 초점을 둔 교육이 주를 이룬다. 가해자가 되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이제, 감시의 부재를 메워야 하지 않을까. 목격자가 되는 법을 배울 차례 아닐까. “피해자를 돕는 목격자, 폭력을 미연에 막는 감시자”. 누구나 목격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에서 자기 문제, 곧 모두의 문제로 확장된다. n번방 성착취물 유포 같은 디지털성폭력은 목격자는 없고 ‘관전자’만 판치는 현실의 참혹한 결과다.

가해자에겐 어떤 교육이 효과가 있을까. 전문가의 진행 아래 가해자들끼리 자신이 저지른 일을 꺼내놓는 과정에서 지은이는 실마리를 본다. 막상 모아놓으면 성이나 범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되고, 그렇게 ‘남자가 다 그렇지’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경우가 그나마 있더란 것이다.

내 아이가 피해자일 때, 가해자일 때. 강제성과 놀이의 경계를 설명해야 할 때… 두고두고 펼쳐본다면 예민하게 벼려진 언어를 구할 수 있겠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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