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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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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바깥보다 더 추운 집에서 꾼 ‘악몽’

등록 2020-02-29 23:11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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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 이주한 우리 부부가 사는 집은 전형적인 시골집. 문을 열면 기다란 마루 뒤로 천장이 낮은 여러 방이 일렬로 나 있고, 문밖에는 마당과 텃밭, 창고가 있다. 앞으로는 산을, 뒤로는 대나무숲을 두고 집에서 조금 걸으면 바다가 펼쳐지는 이 집의 유일한 단점은 아주 춥다는 것. 새집에서 지낼 만하냐는 마을 이웃들의 물음에 우리 부부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다 좋아요, 추운 것 빼고는. 그런데 너무 춥네요.” 오래된 촌집에서 첫 겨울나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 이 집을 방문했던 때가 또렷이 기억난다. 식탁에 앉아 이전에 살던 분과 이사 날짜를 조율하는데, 식탁 아래 두 발이 너무 시렸다. 한겨울이 오기 전, 11월 중순이었는데 말이다. 겨울에는 몹시 춥고, 여름에는 몹시 더울 것이라는 주의를 들었다. 슬프게도 그 말은 맞았다. 해가 드는 낮에도 집 안보다 집 밖이 더 따뜻했다. 종일 해가 들지 않았다. 우리 마을은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해가 잘 드는 양지, 왼쪽은 해가 잘 안 드는 음지인데, 하필 우리 집은 음지에 있다. 게다가 차가운 시멘트벽 위에 벽지 하나 달랑 발라져 있는 것이 전부. 단열이 전혀 안 되니,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게 당연하다. 창문마다 에어캡 시트를 사다 붙이고, 그 위에 큰 천까지 덮어씌웠다. 탁 트인 전망을 포기했다. 추위 앞에 전망이 무슨 소용인가.

이사를 오고 얼마 뒤, 악몽을 꿨다.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남해. 이사를 오자마자 곳곳에 전화했다. 가스집에 전화해 주방에서 쓸 액화석유가스(LPG)통을 새로 샀고, 곧이어 주유소에 전화를 걸었다. 보일러 기름통을 4분의 3만 채웠을 뿐인데 28만5천원(사진)이 들었다. 어떤 집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기름을 채운다는데, 겁이 났다. 시골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겠다던 우리 부부의 결심은 늘어가는 영수증 앞에서 무색해졌다. 보일러실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남은 기름을 확인했다. 기름을 아껴보겠다고 전기장판과 전기난로를 새로 샀지만, 누진세 폭탄을 맞을까 늘 불안했다. 그러다 무서운 꿈까지 꾼 것이다. 분명 보일러 기름을 가득 채웠는데 다음날 기름통이 텅 비어 있는 게 아닌가. 너무 허망해서 주저앉아버렸다.

어느덧 길었던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있다. 다행히 보일러실에서 주저앉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집 안에서 내복과 양말은 물론 두꺼운 외투까지 입은 채 수시로 따뜻한 물을 끓여 마시고, 매일 하던 샤워를 이틀에 한 번으로 줄인 덕분일까. 주유소에 다시 전화하는 일 없이 첫 겨울을 버텼다. 우리 집 계량기를 확인하고선 “아이고, 이 집은 전기세가 많이 나왔네요”라는 기사님의 한마디에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전기세 고지서에 폭탄은 없었다. 태양광발전기 덕분에 한 달 전기세가 5천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웃들에 비하면 큰돈이지만 말이다. 추위에 잔뜩 굳었던 몸과 마음도 봄기운에 슬슬 풀려가는 걸까. 이렇게 추운 집에선 1년 이상 못 살겠다고, 내년에는 차라리 도시가스가 된다는 읍내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며 남편과 같이 입을 맞췄는데, 어느새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래도 마당 있는, 오래된 문살이 예쁜 시골집이 더 낫지 않겠어?” 이제 촌집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봄이 다가오고 있다.

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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