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4분의 1이 동양인” “이민자들에게 들어가는 숨겨진 비용”
동양계 이민자의 증가와 점증하는 사회적 부담 문제를 짚은 한 호주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이는 인종에 대한 혐오표현일까? 아니면 이민 정책에 대한 공적 논의를 촉발하는 보도일까?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를 연구해온 캐서린 겔버가 쓴 (유민석 옮김, 에디투스 펴냄)를 보면, 이는 보도 행위가 아니라 혐오행위다. 겔버가 설계한 혐오표현 ‘판별법’을 적용해보자. 판별법 1단계(사실성 판단)는 팩트가 그리는 ‘불평등의 빅픽처’를 간파하는 것이다. 해당 기사의 팩트가 그리는 세계는 동양계 이민자가 비동양계 호주인에게 위협이 되는 불평등한 세계다.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세계관으로 편집된 팩트는 전혀 다른 팩트로 반박되는 약점이 있다. 1986~91년 이민자는 해마다 14만2천 명꼴로 폭증했고 이 중 절반이 동양계 이민자였다는 ‘존경받는 인구통계학자’의 팩트는, 1995~96년 가장 많은 이민자 집단은 뉴질랜드(12.4%)였고, 두 번째는 영국(11.4%), 중국(11.3%)은 세 번째였다는 호주 인권 및 기회균등위원회의 보고서 ‘사실에 직면하자’(Face the Fact)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혐오표현 판별법 2단계(규범 및 가치 판단)는 해당 표현이 강화하는 통념을 규명하는 일이다. 이 기사는 인종적으로 우월한 집단이 열등한 집단을 배제하고 경계해도 된다는 백인 사회의 규범과 가치를 강화한다. 호주의 연구자들은 이 기사의 동양인에 대한 정의가 “인구통계학의 열성 인종 유전자 이론”으로 나치 독일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기고문을 보내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과 같은 혐오표현 행위자가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를 드는 순간 모두 ‘멘붕’에 빠진다는 점이다.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 난민 혐오 등 소수자 혐오가 판치는 한국에서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일이 번번이 좌표를 잃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가 혐오표현 행위자의 면책 수단으로 오용되는 딜레마 때문이다. 가수 설리의 부고 이후 모욕과 명예훼손 더 나아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가 분출하지만, 표현의 자유에 놓인 이 덫을 제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게다.
겔버는 책에서 이 덫을 제거하는 탁월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바로 ‘말대꾸’(speaking back)다. 피해자, 피해자 집단, 공동체가 혐오표현 행위자를 반박하는 ‘대항표현’(counter speech)을 하고, 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앞서 제시한 혐오표현 판별법을 거울처럼 반대로 하면 된다. 일례로 지난 3월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 총격 테러 때 히잡을 쓰고 추모에 나선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모습은 혐오를 압도한 대항표현의 사례다.
대한민국의 넷페미(2000년대 피시통신에서 시작되고 2010년 들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어지는 온라인 공간의 페미니스트)들이 온라인 공간의 여성혐오적인 발화들에 맞서온 역사가 어쩌면 대항표현의 역사였는지도 모른다. 악플을 공기처럼 마시며 살던 가수 설리가 10월14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SNS의 동년배 20대 여성들은 설리의 죽음을 또 다른 혐오표현에서 지키기 위해 대항표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진명선 젠더 미디어 슬랩 편집장 tor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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