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더위가 한창일 무렵 중앙아시아 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인상 깊은 장면이 여럿 있었는데,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 호수를 찾았을 때 마주친 장면도 그중 하나다. 이식쿨 호수는 제주도 넓이의 서너 배쯤 되는 크기를 지녔고, 화창한 날에는 건너편에 톈산산맥의 설산이 길게 늘어선 모습도 볼 수 있다. 이토록 좋은 곳까지 왔는데 눈으로만 보고 돌아서는 건 아쉬워 일행과 함께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아동노동과 학습노동숙소에서 차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 선착장이 나왔다. 예약해놓은 유람선을 타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동안 독수리인지 매인지 모를 야생 조류를 팔뚝에 올려놓은 소년 몇 명이 보였다. 신기한 듯 바라보는데 그중 한 소년이 일행에게 다가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며 자기 팔뚝 위에 올라앉아 있던 새를 일행의 어깨 위로 올려주었다. 자신의 새를 빌려줄 테니 사진 찍고 돈을 내라는 뜻임을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행이 고개를 끄덕이자 뒤따라온 소년도 자신의 새를 반대편 어깨에 올려놓았다.
그 장면을 보면서 오래전 몽골 여행을 하던 중에 마주친, 양동이 안에 산딸기를 담아놓고 팔던 소녀가 겹쳐진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거기다 미얀마의 카렌족 소녀가 관광객을 위해 춤추던 모습까지 떠올랐다. 그 소녀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오래도록 잔상에 남았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비슷한 풍경과 어렵지 않게 마주치곤 한다. 그때마다 저 아이들이 학교는 다니고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전세계에서 아동노동 인구가 1억6천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앞서 예를 든 아이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종일 돌을 깨거나 나르고, 심지어 광산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도 많다고 들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2조는 “모든 아동은 경제적으로 착취당해서는 안 되며, 건강과 발달을 위협하고 교육에 지장을 주는 유해한 노동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 어딘가에선 수많은 아이가 돈 몇 푼 벌기 위해 연장을 들거나 호객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그들 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도덕주의를 앞세워 그 아이들의 부모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내가 살고 있는 땅의 아이들 현실은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 땅에도 적은 수이지만 아동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다수는 노동 대신 학습에 매달리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그 아이들이 하는 학습이 그저 학습일 뿐일까 하는 점이다. ‘학습노동’이라는 말이 나온 지도 오래됐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건 미래 노동자를 길러내는 것이 주목적이다.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노동’이라는 말로 아이들의 학습노동을 설명하기도 한다. 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임금을 받는 노동 외에 뒤에서 경제체제를 떠받치는 가사노동과 학습노동 같은 게 있는데 그걸 그림자노동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실제 학생들이 학교나 학원에 가서 학습노동을 하지 않으면 교육시장은 무너진다.
주말노동까지 감당하는 아이들이 땅의 아이들이 감당하는 학습노동은 하루 8시간을 훌쩍 초과하며 주말노동까지 하는 게 현실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아동노동 대신 과도한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정말 행복한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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