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정신보건원 인간두뇌수집원의 총책임자인 바버라 립스카(1951~)는 성취와 도전을 즐기며 살아가는 과학자였다. 폴란드에서 신경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80년대 말 미국 연구소에 스카우팅된 그는 수많은 쥐를 실험하고 시체안치소에서 들여온 인간의 뇌를 썰면서 30여 년간 정신질환 연구에 매진했다. 1990년대엔 조현병이 생기는 뇌의 핵심 위치가 전두피질임을 밝힌 ‘립스카 모델’ 연구로 주목받으며 정신질환 치료의 새 장을 열었다. 그의 곁에는 믿음직한 수학자 남편이 있었고, 아들딸 모두 성공한 의사요 과학자였다. 그뿐인가. 매일 아침 수영장에서 2㎞를 헤엄치고, 30㎞를 자전거로 출근하며, 철인3종 경기에 참여하는 에너자이저였다. 2009년엔 유방암, 2011년엔 흑색종(피부암의 일종)도 이겨냈다. 하지만 2015년 1월 어느 날 갑자기 시야 일부분이 안 보이면서 ‘뇌의 붕괴’가 시작됐다. 시각 이상을 일으킨 후두엽의 종양은 수술로 처리됐지만 인간의 가장 진화된 뇌 영역인 전두피질을 비롯해 뇌 전반으로 종양이 번졌다.
뇌의 각 부위가 망가지며 담당하던 기능들도 손상됐다. 기억과 언어 기능이 쇠퇴하는 알츠하이머병부터 자제력을 잃는 전두측두치매, 양극성장애(조울증), 조현병에 이르는 다양한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났다. 가령 이런 식이다. 늘 출근하던 길에서 방향을 잃고, 집을 못 찾아 오줌을 싼 채 길거리를 헤맨다. 간단한 곱셈·뺄셈·나눗셈(신기하게도 덧셈은 가능)도 하지 못한다. 휴대전화 작동법을 잊어버린다. 한 가지 사건에 꽂히면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적인 분노를 터뜨리고 과도하게 비판하며 몰아세운다. 누군가 피자에 플라스틱 조각을 넣었다고 의심한다. 흥겨운 재즈 선율이 마치 칼날처럼 날아와 몸을 베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감각기관이 포착하는 갖가지 정보의 경중을 분간할 수 없어 망상에도 시달린다. 뇌가 아프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과학자임에도, 정작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하는 ‘질병인식불능증’에 빠진다.
그 온갖 불행에서도 다행히 언어 기능을 잃지 않은 그는 투병 와중에도 정신질환자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소상히 기록했다. 두어 달 동안 정신의 암흑세계에 머물던 그는 면역치료·표적치료·사이버나이프 등 첨단 의술과 가족의 지극한 돌봄 속에 가까스로 ‘정상적인 인간’ 세계로 복귀한다. 치료 후유증으로 온몸이 갈라져 피가 나고 발진·오한에 시달리며 한쪽 눈의 시력을 잃는 불행을 겪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립스카는 “고통에도 계속 버티고 이겨내며 기능 또는 쓸모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존자’의 정의를 영광스럽게 받아들인다. “나의 여정은 내게 뇌의 풍경을 여행할 값진 기회를 주었다. 그 결과 나는 말도 못하게 복잡한 뇌라는 구조물과 그 뇌의 산물로서 대단히 놀라운 회복력을 지닌 인간 정신에 관해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2016년 3월 에 ‘정신병에 걸린 신경과학자’라는 에세이를 기고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던 립스카는 언론인 일레인 맥아들의 도움을 받아 책 를 썼다. 그는 지금도 인간두뇌수집원의 디렉터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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