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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도시 거제의 ‘진짜 이야기’

양승훈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등록 2019-02-03 01:30 수정 2020-05-03 04:29

“‘빅5’ 조선사 한국독점시대 ‘끝’”. 2015년 12월30일 경제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경제부 산업팀에서 조선업을 담당할 때 썼던 기사다. 국내 조선소 5개사가 독식하던 세계 조선시장 판도가 중국 조선소의 진입으로 깨졌다는 내용으로, 한국 경제를 떠받치던 중공업이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산업이 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년 가까이 호황을 누리던 중공업은 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경영난을 기점으로 고난의 시기를 맞는다. 조선소마다 도미노처럼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경남 거제·통영 등 조선업을 기반으로 한 산업도시의 침체를 다룬 르포가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외적 성장에 치우쳐 기형적 모습이 된 산업도시를 섬세하게 살핀 기사는 많지 않았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조교수는 대우조선해양에서 5년간 일하며 지켜본 거제의 ‘진짜 이야기’를 담아 (오월의봄 펴냄)를 펴냈다.

한국은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중공업을 성장시킨다. 산업경쟁력을 국가경쟁력으로 보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지원과 육성이 이뤄졌다. 조선업은 2000년대 초반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경제위기로 물동량이 줄자 수주량이 급감하고 조선소들은 위기에 처한다. 일본의 기술력과 중국의 값싼 인건비 사이에 끼어 헤어나지 못했다.

회계장부 조작 등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 법정관리 코앞까지 가게 된다. 지역경제가 타격을 입기에 정부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회생은 쉽지 않았고 여론은 싸늘했다. ‘좀 험하지만 벌이가 괜찮은 직업’으로 부러움을 사던 중공업 노동자들은 돈도 많이 버는데 고용도 보장받으려 하고, 심지어 자녀에게까지 일자리를 세습하려는 사람들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몇 차례 경기가 위축되면서 ‘중공업 가족’ 내부의 모순과 긴장이 터져나왔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이 아닌 노동자와 직원 공동체를 의미하는 중공업 가족에 합류하지 못한 존재들이 서서히 드러났다.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하청노동자, 일을 찾아 타지에서 들어온 이주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다. 조선업이 도약하는 동안 도시는 이방인을 품는 곳이 되었지만 보수적인 삶의 형태에 머물렀다. 현장에선 하청노동자들을 하대했고, 여성의 일을 가사노동이나 사무보조 영역에 국한했다. ‘또 하나의 가족’을 강조했던 중공업 가족은 세계관이 전혀 다른 젊은 세대에게 약점을 드러냈다. 젊은 노동자들은 일터와 주거 지역을 분리해 셔틀버스로 출퇴근하는 쪽을 택했다. 딸들은 사무보조직을 하다 결혼해 다시 중공업 가족이 되는 흐름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런 내부 모순과 변화를 통계 자료와 함께 나열하며 “거제가 모쪼록 노동과 삶을 훌륭히 아우를 수 있는 산업도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 2년간 숨죽이며 위기를 수습해왔는데 산업도시 거제와 중공업 가족에게 또다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거제의 내일은 또 어떻게 될까.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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