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세계를 둘로 나누려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이 있다. 우리와 타자, 남성과 여성, 선과 악, 갑과 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되지만, 하늘의 별만큼이나 펼쳐진 개개의 다양성과 이들이 맺어가는 복잡한 권력 작동과 그 이면을 지나치게 한다.
동물을 말할 때 우리가 가장 자주 기대는 틀이 ‘인간과 동물’이라는 이분법이다. 사실 이 이분법은 정확하지 않다.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라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이다.
인간과 동물이란 그릇된 이분법인간과 동물의 이분법은 ‘인간과 동물이 다르다’는 것을 암암리에 전제한다. 인간은 동물보다 지위가 높으며, 동물을 지배할 수 있다. 또한 동물은 인간이 지닌 지성이나 감정 같은 것이 없으며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일반적인 생각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동물을 사람처럼 대하기도 한다. 거리를 나가보라. 옷을 입고 다니는 치와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 들고 사람 구경을 하는 시베리안허스키, 자신을 반려동물의 엄마 아빠라고 이르는 사람들. 반면 식탁에 오른 돼지의 살점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동물은 의인화하고, 어떤 동물은 물건처럼 대한다. 근대 이후 동물에 대한 인식은 의인화와 사물화라는 극단을 분열증적으로 오간다.
미국 시카고 브룩필드 동물원에 살던 서부롤런드고릴라 ‘빈티 주아’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릴라 중 하나다. 1996년 8월16일 세 살배기 남자아이가 동물원 유인원관 아래로 떨어졌다. 유인원관에는 아이보다 덩치가 열 배나 큼직한 고릴라들이 있었다. 사육사들은 마취총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상황이 펼쳐졌다. 고릴라 암컷인 빈티 주아는 남자아이를 자기 무릎 위에 앉혀놓고 등을 부드럽게 두들겼다. 위기가 평화로 반전됐다. 아이는 사육사에게 안전하게 인계됐고, 빈티 주아는 ‘사람을 살린’ 고릴라로 추앙받았다.
2016년 5월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똑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세 살 남자아이가 유인원관의 얕은 물에 떨어졌다. 관람객들은 비명을 질렀고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아이에게 다가간 건 17살 수컷 서부롤런드고릴라 ‘하람베’였다. 하람베는 아이의 팔을 잡고 들더니 몇 미터를 쏜살같이 끌고 갔다. 팔을 잡아 응시하고 안으려는 듯한 모습도 관찰됐다. 동물원은 관람객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 뒤, 약 10분 뒤 하람베를 사살했다.
두 고릴라의 엇갈린 운명첫 번째 사례에서 빈티 주아에 대한 대중의 환호는 인간의 특성을 동물에게 투영한 결과다. 인간이나 할 수 있는 숭고한 이타주의적 행동을 동물도 했다면서 우리는 박수를 쳤다. 미국 주간지 은 1996년 ‘베스트 피플’의 한 명으로 빈티 주아를 뽑았다. 최고의 의인화였다. 반면 일부 학계에서는 뾰로통한 투로 빈티 주아의 행동을 깎아내렸다. ‘모성 본능에 혼란을 일으켰다’ ‘자신의 새끼로 착각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사례에서 동물원은 단호하게 하람베를 사살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이유였다. 과잉 대처 논란이 일면서, 고릴라 특유의 새끼를 대하는 행동이었다는 제인 구달, 마크 베코프 등 저명한 동물행동학자들의 비판적인 말은 있었지만, 그들도 동물원 쪽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아이가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불확실한 상황에서 두 종의 생존이 경합하는 것처럼 느껴지자 인간은 같은 종을 선택했다.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발은 우리에게 본능적으로 ‘의인화 거부’ 성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동물과 다르다고 주장하려는 본능 말이다. ‘우리는 너희들과 달라. 우리의 지위를 위협하지 마.’ 이를테면, 침팬지는 원래 기분이 좋을 때 키스를 한다. 의인화 거부자들은 이것을 키스라고 하지 않고 ‘구강 대 구강 접촉’이라고 한다. 빈티 주아의 행동에 일부 학자들이 보인 싸늘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의인화는 동물을 사람처럼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와 사고를 이용해 설명할 수 없다면 어떻게 동물을 설명한다는 말인가? 우리는 손·발·머리 등 신체기관과 시각·청각·후각 등 감각기관을 타고났다. 우리의 정신적 세계는 이 감각기관에 갇혀 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의인화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과학에 기반해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유인원처럼 몸과 감각기관이 비슷하게 진화한 동물은, 의인화로 생기는 오해 비율이 낮을 것이다. 반면 음파로 세계를 인식하는 박쥐나 고래의 인지 작용을 과연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의 “우리는 박쥐를 알 수 있을까”라는 유명한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박쥐가 되어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박쥐의 감각기관과 생태를 파악한 뒤 불확실성을 인식하면서 조심스럽게 과학적 주장을 해나가는 것, 마크 베코프는 그것을 ‘생태중심주의적 의인화’라고 한다.
인간 입맛대로 하는 의인화문제는 현실에서 의인화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입맛대로 오용된다는 것이다. 마크 베코프는 책 에서 의인화에 관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며 이렇게 꼬집었다.
“한 과학자가 ‘동물은 행복하다’고 말하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지만, ‘동물은 불행하다’고 말하면 즉시 지나친 의인화라는 비난이 빗발친다. …이런 식으로 ‘의인화에 대한 횡설수설’은 주로 인간들이 스스로 더 나은 기분을 느끼려는 데서 비롯된 행동인 듯하다.”
끝으로 덧붙인다. 빈티 주아는 정말로 고매한 형제애로 남자아이를 살린 걸까? 아니면 자신의 새끼로 착각한 걸까? 둘 다 아니다. 빈티 주아는 너무 흔한 일을 했다. 다친 개체를 돌보는 것은 고릴라 생태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하람베도 마찬가지다. 자연에서 흔히 관찰되는 이타적 행동은 보통 종 안에서도 이뤄지지만 종 간에도 나타난다. 우리가 초여름 삐쩍 말라 사경을 헤매는 새끼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고 입양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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