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는 메티스(혼혈)였다. 아메리칸인디언과 프랑스 이민자의 후손인 그녀는 10시간을 달려도 지평선에 닿지 않는 캐나다 프레리의 한 소도시에 살았다. 그녀는 가끔 반려견 ‘바클리’와 함께 빨랫감을 들고 내가 사는 2층의 세탁실에 올라왔다. 그날 밤 바클리가 밤새 울부짖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 달 전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유방암에 걸렸다고 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바클리는 이튿날 새벽까지 깽깽거렸다.
바클리는 왜 울었을까. 주인의 죽음을 슬퍼했던 걸까. 아니면 미동 없는 육체와 무거운 분위기가 그저 혼란스러웠던 걸까. 그 개는 진정 죽음과 영원한 부재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세계의 눈이 집중된 “애도와 슬픔의 여행”지난주까지 세계의 눈은 갓 낳은 새끼를 잃은 범고래 어미에 쏠려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사는 ‘남부 정주형 범고래’(SRKW) J무리의 35번 범고래인 J35가 새끼를 낳은 건 7월24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전해진 출산 소식이었기에, 연구원들이 이날 오후 현장 해역에 급파됐다. J35는 새끼를 주둥이로 계속 들어올리고 있었다. 새끼는 움직이지 않았다. 죽어 있었다.
그 뒤로 J35는 새끼를 놓아주지 않았다. J무리를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사체를 들어올리는 고된 노동을 멈추지 않았다. J35의 가까운 친척은 J35를 둘러싸고 천천히 움직였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대엿새가 흘렀다. 새끼의 몸이 썩기 시작했다. 어미는 언제 새끼를 하늘나라로 보내줄까. 시애틀 지역일간지 는 날마다 J35의 근황을 속보로 전했고, 《CNN》 등도 이 범고래를 조명했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걱정도 있었다. 사체를 계속 밀어올리며 헤엄치려면, 물고기 사냥을 할 시간이 없다. J35가 굶어 죽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시시포스의 노동을 다른 동료가 대신해주는 것이 분명했다. 가끔 J35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한참 뒤 J35는 다시 새끼와 함께 목격됐으므로, 그 시간 동안 다른 동료가 고된 노동을 대신한 것이 분명했다.
사실 범고래 J35의 행동은 고래 연구자들 사이에선 낯선 모습이 아니다. 연구 논문도 심심찮게 나온다. 제주도의 남방큰돌고래 무리에서도 이런 행동이 발견된 바 있다.
대개 어미는 죽은 새끼를 며칠 동안 떠나보내지 않는다. 주둥이로 죽은 새끼를 수면 위로 들어올린다. 다른 돌고래들이 애도 의식을 대신해주기도 한다. J무리의 여행은 영정 사진을 들고 망자의 삶터와 일터를 도는 인간의 장례식을 닮았다. J무리는 샌환제도와 샐리시해 곳곳을 돌았다. 저명한 해양포유류 학자인 케네스 발콤은 “애도와 슬픔의 여행”이라고 말한다. 고래의 장례식이라고? 인간중심적인 해석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렇게 말고는 고래들의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다. 동물학자 바버라 킹은 에서 말한다. “인간중심주의라는 딱지를 붙일 필요는 없다. 애도와 사랑은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다. 다른 동물들도 공유한다”
아프리카 곰베국립공원에서 야생 침팬지를 가까이서 관찰한 제인 구달이 목격한 죽음의 사례는 우리 가슴을 저미게 한다. 침팬지 ‘플로’의 아들 ‘플린트’는 엄마가 전부인 아이였다. 젖이 다 말랐는데도 엄마인 플로에게 돌아왔다. 무리 안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할 나이가 됐는데도 돌아온 아들 플린트에게 어미 플로는 음식을 나눠주고 자신의 등에 태우기도 했다. 플린트가 8살 반이던 때, 엄마 플로가 죽었다. 제인 구달은 책 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엄마 따라간 침팬지 플린트“플로가 죽고 사흘이 된 날이었다. 플린트는 개울가 옆의 높은 나무로 올라가 얼어붙은 듯 텅 빈 둥지를 응시했다. 약 2분 뒤, 플린트는 늙은이의 몸짓처럼 몸을 돌리고 나무 밑으로 내려와 누웠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둥지는 플로가 죽기 직전, 플린트와 플로가 함께 있던 곳이었다.” 플린트는 거기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뒤 플린트는 먹지 않았다. 엄마 플로가 죽은 지 3주가 되던 때였다. 플린트도 저세상으로 갔다. 동물도 깊고 풍부한 감정이 있고,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생명이라는 걸 우리는 직관적으로 안다. 그러나 어떤 동물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이를테면,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에 대해서는 우린 끊임없이 의인화하며 사람 대하듯 한다. 반면 우리가 먹는 고기를 생산하는 생명들, 닭·돼지·소 등의 감정과 정신생활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A4용지 한 장보다 좁은 곳에서 2년을 살다 가는 달걀 낳는 닭의 절망, 전기봉을 맞으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의 공포, 건너편 뜬장에 살던 개가 끌려가 도살되는 모습을 본 동료 개의 슬픔. 짧은 삶과 죽음의 끝을 알면 알수록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장식 축산이 만들어내는 상품 포장지에 싸여 그들의 삶은 은폐되고 우리는 죄의식 없이 동물을 소비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존재에 대한 공감이 우리 태도를 바꾸어줄 것이다. J35와 범고래들이 치른 ‘장례식’으로 미국에서는 이 범고래 무리의 보전 조처가 논의되고 있다. 장례식 과정에서 주목받은 또 다른 범고래가 J50이다. 태어난 지 4년이 채 안 된 이 범고래는 건강 악화로 죽음이 염려되는 상황이다. 총 75마리가 남은 샐리시해의 남부 정주형 범고래는 주요 먹이인 왕연어가 사라지면서,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진 상태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이들을 위협하는 요소다.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이별의 시간2004년 12월 시카고 브룩필드 동물원에서는 고릴라 ‘배브즈’가 신장병과 긴 싸움 끝에 죽었다. 배브즈는 고릴라 무리의 알파 암컷이었다. 동물원 사육사들은 고릴라에게 애도의 시간을 주었다. 죽은 배브즈가 누워 있는 방의 문을 열어주었다. 맨 먼저 9살 딸 ‘바나’가 다가갔다. 바나는 엄마 머리 옆에 앉아 한 손으로 엄마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엄마의 가슴을 쳤다. 그리고 엄마 옆에 누워 자신의 머리를 죽은 엄마의 팔 사이에 밀어넣었다. 그다음엔 배브즈의 43살 엄마 베타와 16살 빈티 주아가 뒤따랐다. 배브즈의 냄새를 맡고 죽은 이의 가슴을 쳤다. 36살 실버백(알파 수컷) 라마만 멀리 떨어져 의식에 동참하지 않았다.
고릴라들은 배브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은 죽음을 공유하는 생명들 사이에서 최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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