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느지막한 오후 우동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당은 꽤 넓고 대부분 자리가 비어 있었다. 홀은 중앙에 파티션을 두어 공간을 둘로 분리하고 테이블은 어림잡아 마흔 개는 돼 보였다. 입구의 직원은 어느 쪽이든 편한 곳에 앉으라 권했다. 왼편 중앙 열에는 노부부가 마주 앉아 우동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가서 같은 열의 테이블에 앉았다. 노부부가 말없이 자기 몫의 그릇을 앞에 두고 식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식당 안은 아주 조용했다. 나는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마침 가방에 있던 미스터리 매거진 를 꺼내 특집 면에 소개된 범죄소설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우동이 맛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루한 장마에 한참 입맛이 없더니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망은 폭염의 열기만큼 높아져 있었다.
특집은 총 다섯 꼭지였는데 추리소설의 한 갈래인 ‘이야미스’라는 장르를 집중적으로 다룬 글이 흥미로웠다. ‘이야미스’란 “싫은 기분이 되는 미스터리”로 읽고 났을 때 뒷맛이 나쁜 추리소설군을 가리키며, 특히 이쪽 부류의 책을 읽으면 나 자신에 대해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이야미스의 핵심 정신은 우리가 각자의 이기적 욕구에 따라 살아가며, 그 욕구가 부딪칠 때는 갈등을 겪다 비극으로 치닫고, 와중에 인간은 남에게 무척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나는 이야미스에 담긴 서늘한 인간세계를 눈으로 쫓으며 내 몫의 우동을 음미했다. 그때 식당 안이 일순 소란스러워졌다. 입구 쪽을 보니 네 사람이 까치발을 들고는 홀의 이쪽저쪽을 둘러보고 있었다. 한 사람이 손가락을 쭉 뻗으며 이쪽으로 가자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이 손가락을 뻗으며 저쪽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그들이 되도록 나와 먼 자리에 앉길 바라며 우동과 이야미스가 놓인 작고 고요한 테이블의 세계로 돌아왔다. 그런데 네 명의 무리는 내 옆으로 와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일제히 의자를 요란스럽게 빼내더니 이제는 또 앉은 채로 의자를 테이블 가까이 당겼다. 그때부터 나는 우동을 먹는 것도 잊고 생각에 잠겼다. 사방에 텅 빈 테이블이 못해도 서른여덟 개나 있는데 이들은 왜 하필 여기로 왔을까? 말없이 책을 읽으며 조용히 우동을 먹는 사람 옆으로.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카페에서 책을 읽는데 옆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360도로 앵글을 돌려가며 셀카를 찍었다. 혹시 내가 배경으로 찍히지 않을까 신경이 쓰여서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묘한 포즈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찍힌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서 곧장 확인하길 반복했다. “너무 뒷모습이니 살짝 얼굴을 옆으로 돌리겠다”면서 다시 포즈를 취했다. 이쯤 되자 나는 그토록 정성스레 찍힌 결과물이 궁금해졌다. SNS로 카페 이름을 검색하니 이미 여러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다행히 내가 배경으로 전격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뒤통수가 나온 사진이 하나 있는데 항의하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그중 한 사진을 보고 폭소하고 말았다. 옆에 앉은 사람이 사진 아래에 “정말 조용하고 예쁜 카페”라고 적었던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과연 이 시끄러운 사람들에게 조용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끄러운 사람들은 자신이 시끄럽다는 것을 알까? 어쩌면 혼자서 혹은 여럿이 고요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건 아닐까? 그래서 고요가 깨지는 것이, 방해받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닐까? 시끄러운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용기는 없다. 혼자서 입 다물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나에게는 쉬울 따름이다. 나 같은 사람은 집에서 영원히 나오지 말라고 해도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다. 당신은 당신이 시끄럽지 않아요? 하고 묻는 것은 생각만 해도 이 들끓는 여름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나는 그저 시끄러운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광장에서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것, 고요한 곳에서 함께 침묵하는 것. 이 단순한 공공의 예의는 어쩌면 이 세상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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