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작가가 이후 2년 만에 신작 (다산책방 펴냄)으로 돌아왔다. 앞선 소설에서 많은 여성에게 때로 불편했지만 지나쳐버렸던 일들이 뿌리 깊은 차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페미니즘 열풍을 이끈 그는 이번에도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 차이가 있다면 1982년 서울 출신 김지영의 생애주기를 통해 보여주던 여성의 현실을 9살 초등학생부터 79살 노인에 이르기까지 60여 명의 여성을 인터뷰해 28편의 단편으로 펼쳐 보여준다는 것이다.
조 작가는 책 서문에서 “쓰는 과정보다 듣는 과정이 더 즐겁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다”고 밝혔다. “인상적인 것은 많은 여성들이 ‘특별히 해줄 말이 없는데’ ‘내가 겪은 일은 별일도 아닌데’라며 덤덤히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점”이라면서 “특별하지 않고 별일도 아닌 여성들의 삶이 더 많이 드러나고 기록되면 좋겠다”고 했다.
조 작가가 글로 목소리를 찾아준 28편의 이야기는 “흔하게 일어나지만 분명 ‘별일’”들이다. 때로는 특별한 용기와 각오, 투쟁이 필요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첫 번째 단편인 ‘두 번째 사람’은 상사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다 마지막으로 폭로라는 방법을 택한 공기업 직원 소진의 투쟁기다. 제도, 규범, 상식 중 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 조용히 물러섰던 첫 번째 피해자가 미안해하자 소진은 생각한다. “조용히 덮고 넘어간 두 번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피해자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결혼일기’와 ‘이혼일기’는 결혼과 이혼을 앞둔 두 자매 이야기다. ‘결혼적령기’라는 애매모호한 시기에 독촉당해 ‘정상적인’ 결혼제도에 들어가지만 며느리·아내가 아닌 나로 살 수 있는 ‘바람직한’ 결혼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이혼의 와중에도 “결혼하면 좋은 일이 더 많다”며 동생을 격려하는 언니는 “결혼해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고 너로 살아”라는 씁쓸한 조언을 건넨다. 여기에 그런 두 딸을 바라보며 쓸쓸한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는 엄마 이야기인 ‘엄마일기’는 모두 하나로 연결돼 결혼에 대한 깊은 물음표를 남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용기를 내는 이들의 이야기는 희망적이어서 반갑다. 올해로 12년째 해결되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는 KTX 해고 승무원의 이야기인 ‘다시 빛날 우리’, 국회 직접고용을 쟁취한 청소노동자 진순의 이야기인 ‘20년을 일했습니다’는 여성들이 모인 집회에서 나오는 구호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조 작가는 에필로그에 자전적 소설 ‘78년생 J’를 담으면서 이렇게 소설을 끝낸다.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단다. (중략) 내 삶과 태도와 가치관이 주변의 사람들을, 조직을, 더 넓게는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책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평범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글로 찾아준 이 소설이 조 작가의 ‘책임지는 어른’으로서 첫 번째 결과물일지 모르겠다.
김미영 문화부 기자 instyl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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