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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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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땅, 만남의 미학

인문학 관점에서 풍수 집대성한 <사람의 지리…>
등록 2018-05-09 21:40 수정 2020-05-03 04:28

땅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지요. 새끼손가락만 한 높이의 콘크리트 군사분계선을 두 사람이 손잡고 넘나들 때, 땅이 보였습니다. 장풍득수(藏風得水).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다…. 분단의 귀신바람이 잦아들고 소살소살 속삭이듯 해빙의 물이 흘러 남북을 적십니다. 자연의 이치이며 인간의 의지입니다. (한길사 펴냄)을 손에 쥔 까닭입니다.

책의 물음은 간결합니다. “한국인에게 풍수는 무엇인가, 한국풍수의 정체와 특징은 무엇인가.” 어쩌면 답도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풍수와 불교는 ‘자연과 마음의 만남의 미학’이다. 한국인에게서 자연과 마음은 간격 없이 넘나들어 하나가 된다. 풍수의 자연은 다름 아닌 마음이고, 불교의 마음은 다름 아닌 자연이다. 비보(裨補)도 마음비보인 동시에 자연비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편하면 어디라도 명당이라고 하고, 마음을 깨치면 어디든 극락정토라고 한다. 사람과 자연은 한자리에 있다.”

의심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단순히 터 잡는 기술 아닌가, 혹세무민하는 미신 아닌가, 비과학적 허구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고 지은이는 말합니다. “전통시대에 풍수는 마을의 자연환경을 인식·평가·관리하는 사회공동체적 담론체계이자 이론체계로 기능함으로써 오늘날 ‘환경’이라는 용어의 쓰임새와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보면 동아시아에서 ‘풍수’는 ‘산수’ 등과 함께 ‘환경’이라는 말 이전에 쓰인 원형적인 용어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참된 풍수는 운명론·결정론 따위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상보적 관계에서 형성된 체계라는 걸 ‘비보풍수’는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비보란 ‘자연의 풍수적 조건을 사람이 보완하는 것’입니다. 물이 흘러 땅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곳에 숲을 만들어 막는 식입니다. 중국·일본과 다른 한국풍수의 특질이랄 수 있습니다. “기존 명당풍수의 형국으로는 결정론적으로 흉한 땅에 불과했으나, 비보를 해서 길한 땅으로 바꾸는 전환적 국면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데 비보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 역사적으로 한 단계 발전된 풍수지리적 태도이자 땅과 사람의 관계에서 사람 중심의 설정 방식이다.”

책은 한국풍수론의 전개와 불교의 영향, 고려·조선 시기 풍수의 정치성을 지나 양평·용인 땅의 삶터·묘지 풍수 사례를 살펴본 뒤 윤선도·이중환·최한기 등 학인들의 풍수 인식을 소개합니다. 사진과 그림, 도표를 이용해 낯선 개념들을 친절히 설명합니다. 지은이는 단언합니다. “풍수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도 등재될 수 있는 동아시아의 전통환경 지식유산임이 분명하다. 등재 과정에서 풍수는 기존의 미신이나 술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류의 전통지식 자원의 하나로 새롭게 정립될 것이다.” 풍수 역시 “세상을 구하고 사람들을 제도하는 법”(구세도인지법·救世度人之法)이라는 게 지은이의 믿음입니다. 환경생태학·환경인문학으로서 풍수 연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도 합니다.

명당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일지 모릅니다. 공자가 말한바 ‘리인위미’(里仁爲美)의 통찰이 바로 참된 풍수 아닐까요. 좋은 땅에 좋은 사람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땅이 그리운 마음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풍수는 우연히 만나는 ‘조우’가 아니라 어떻게든 만나야 하는 ‘상봉’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이치이며 인간의 의지입니다.

전진식 교열팀장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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