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평화 연구자인 정희진의 글은 늘 ‘혼자서’를 전제로 한다. 혼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혼자 생각을 길어낸다. 경쾌한 문장으로 통쾌한 직설을 날릴 때도 행간에서 고통이 배어나오는 까닭은 외로움과 고독에 전면적으로 맞서는 그 ‘혼자서’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그가 아예 ‘혼자서 본 영화’를 들고나왔다. 그는 8살 때 텔레비전 를 ‘혼자서’ 본 이래(다른 가족들은 방 한쪽에서 심각한 대화를 하고 있었기에) 줄곧 영화를 혼자서 탐독(말 그대로 ‘읽었다’)해왔다고 한다.
(교양인 펴냄)에 담긴 영화 28편은 여러 소재를 넘나든다. 스릴러물에 속하는 , 대중에게 ‘에로물’로 여겨졌던 , 박정희 시대를 다룬 등등. 정희진 스스로도 “나의 영화 취향과 이데올로기는 ‘문란’하기 짝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주인공들이 나오더라도, 등장인물들이 맺는 관계의 무늬와 극중 시대 배경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그가 영화를 읽는 시선은 놀라울 만큼 ‘정연’하다. 그는 영화를 읽을 때마다, 자신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 즉 남성/여성, 약자/강자를 둘러싼 차별과 폭력을 날카로운 통찰로 짚어낸다. 중년의 여성 피아니스트가 젊은 제자에게 피학적 성애를 원하는,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2001)를 보면서 그는 묻는다. 어떤 남자들은 ‘여자는 강간을 즐긴다’는 프로이트식 마조히즘을 아무렇지 않게 유포하면서도 여성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마조히즘은 왜 ‘변태’라고 비난하는가? “억압받는 사람은 아름답고 착한 섹스만 (원)해야 하나?” 정해진 ‘성 각본’에 저항함으로써 “늙고 외로운 여자는 욕망도 선택도 품을 수 없다”는 공식을 깨뜨리려는 주인공이 결국 실패하는 과정을 보면서 정희진은 내내 운다.
그는 ‘정치적 영화’인 김동원 감독의 (2003)에서도 “여성주의적 독해”를 시도한다. 이 영화가 주인공인 장기수 할아버지들을 “완전한 인간”으로 묘사하거나 과도한 윤리의식으로 포장하지 않음으로써 빼어난 성취를 거둔 이유로, 그는 감독과 장기수 사이에 거리가 없다는 것, 즉 그들 “모두 남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기수와 감독의 시선이 동질적인 것은, 변영주 감독의 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젊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여성 감독을 자신들과 같은 범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
그의 시선은 날카롭되 따뜻하다. 정희진은 세상의 가장 나쁜 남자들만 골라 사랑하는 것 같은 마츠코( 나카시카 데쓰야·2006)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마츠코는 ‘피해’를 입지만 나쁜 세상으로부터 영향받지 않고 자신의 타고난 선의, 사람에 대한 믿음을 고집스럽게 지켜낸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 때문에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착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페미니즘 흐름에서 논쟁적인 화두로 이어진다. “여성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착한 여자이지 나쁜 여자가 아니다. 저항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우리’를 나쁜 여자들이라고 한다면 사회가 잘못이지, 우리가 굳이 나쁜 여자라고 되받을 필요는 없다.” 정희진이 작성한 ‘영화 읽기’의 바통은 누군가에게로 또 건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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