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나무는 프랙털(fractal)을 잘 드러낸다. 프랙털은 자기유사성을 특징으로 하는 기하학적 형태를 가리킨다. 미국의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가 처음 창안한 개념이다. 한겨울 나무는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있다. 그래서 더 잘 보인다. 기둥에서 가지가 뻗고 그 가지에서 다시 가지가 자란다. 나무 전체와 가지의 부분들은 놀랍게도 닮았다. 강줄기도 그러하다. 축척을 달리해 한강 지도를 살피면, 강 본류와 지류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걸 발견한다. 부분과 전체의 유사성, 이것이 프랙털이거니와, 인간의 뇌 주름 또한 전형적인 프랙털 구조를 보인다.
인간세를 이루는 공간도 프랙털을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주창한 지역 균형발전은 물리학적 틀로 볼 때 프랙털과 연결된다. 나라 전체로 보면 수도 서울에 온갖 물산과 사람이 쏠려 있으며, 광역시·도 단위로 살펴도 대도시와 다른 지역의 관계가 그러하다. 대도시 안에서 도심과 도심 아닌 곳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공간적 프랙털 구조’의 불평등·비효율을 근본에서 혁신하려는 게 지역 균형발전론이랄 수도 있다. (김규원 지음, 미세움 펴냄)는 그것을 말하는 책으로 읽힌다.
현직 기자인 지은이는 행정수도를 표방하며 기안된 세종특별자치시가 헌법재판소의 ‘관습 헌법’에 근거한 위헌 결정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축소된 과정을 시작으로, 세종시의 장단점과 과거·현재·미래를 23개 항목에서 다층적으로 살핀다. 관련 기록에 충실하게 접근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과감하게 보태어 서술한다. 비교·대조해볼 수 있는 사진·도면 자료를 풍부하게 실었다. “나로 하여금 지역 간 균형발전 정책에 관심을 갖게 만든 것은 이런 통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노무현이었다. (…) 노무현의 대담한 도전 이후 ‘지역 간 균형발전’이라는 주제는 지난 15년 동안 내 머리에서 떠난 일이 없었다.”
세종시를 향한 ‘비판적 회고와 전망’의 관점이 잘 드러나는 동시에 논쟁적인 대목 몇을 소개한다. “대전이라는 기존 도시를 충분히 활용하는 방향으로 이 정책을 추진했다면 행정도시 건설과 지역 간 균형발전은 훨씬 원만하고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다.” “세종시와 10개 혁신도시를 모두 신도시 방식으로 건설한 것은 대표적 실책이다.” “통일된 한반도의 수도는 서울이 아니라 평양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구조를 집중형이 아닌 분산형으로 결정한 일은 (…) 앞으로 세종시를 매력 없고 다니기 불편한 도시로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앞으로 세종시 남쪽에 세종역을 설치한다고 해도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에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사실상 세종시를 정면으로 다룬 첫 책이다. 프랙털의 관점에서 덧붙인다면, 세종시 안에서 정부세종청사를 중심으로 한 ‘신도시’와 옛 충남 연기군 농촌 지역 사이의 균형발전 문제를 ‘주민들의 목소리’와 함께 담은 후속작을 기대한다. 균형발전의 문제 또한 ‘균형의 균형의 균형…’ 식으로 프랙털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참된 균형이란 정지된 균형 상태가 아니라 균형으로 가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움직임인 까닭이다.
전진식 교열팀장 seek16@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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