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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역사학자 가토 요코의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등록 2018-01-14 13:00 수정 2020-05-03 04:28

“2월의 스무 날, 하늘의 달은 깊은데 아직 살아 있는 아이는 싸우고 있는가?”

1945년 이른 봄, 일본 민속학의 일인자로 꼽히는 오리구치 시노부는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제자 후지이 하루미를 그리워하며 이런 시를 읊었다. 하지만 그가 아끼던 젊은 제자, 후지이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억되는 이오지마 전투에서 숨졌다. 그나마 후지이는 죽은 장소라도 알 수 있었지만 ‘애초부터 이길 수 없었던 전쟁’을 벌이고 머나먼 전장으로 수많은 젊은이를 떠나보낸 일본 정부는 숨진 이들의 “전사한 장소조차도 알려줄 수 없었다”.

한반도에서 랴오둥반도, 만주, 중국 본토, 인도차이나 그리고 하와이의 진주만으로…. 1894년 청일전쟁에서 시작해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을 거듭한 일본은 1941년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른 뒤 패망했다. 일본의 역사학자인 가토 요코 도쿄대학 교수는 청일전쟁·러일전쟁·제1차세계대전·만주사변과 중일전쟁·태평양전쟁의 주요 특징, 이 전쟁이 사회에 끼친 영향과 변화를 명쾌하게 설명하며 전쟁의 본질을 말해준다. 역사공부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중·고교생 20여 명에게 닷새 동안 강의한 원고를 토대로 만들어진 책 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논지를 펼쳐나가는 ‘이상적인 교과서’의 모델과도 같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명분은 무엇이었나? 혹시 나도 그 시대에 살고 있다면 전쟁을 해야 한다는 설득 논리에 넘어가진 않았을까? 왜 청일전쟁을 반대하는 일본인은 별로 없었을까? 러일전쟁 뒤 왜 유권자 구성이 달라졌을까? 만주사변은 왜 ‘일으킨’ 전쟁이고 중일전쟁은 왜 ‘일어난’ 전쟁이라고 할까? 일본은 정말 미국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일본의 선제공격을 예상했음에도 왜 미국인들은 진주만 침공에 대비하지 못했을까?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데도 왜 일본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우리는 전쟁의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지은이는 전쟁을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주권·사회계약에 대한 공격, 다시 말해 상대국의 헌법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것”이라는 루소의 정의에 공감한다. 전쟁이란 단지 영토를 점령하고 상대방 군대를 편입하는 수준을 넘어 그 사회의 근본 질서를 고치는 것이란 얘기다. 천황이 국가를 통치한다고 규정한 대일본제국헌법(1889년 공포)이 “(국가의) 권위는 국민으로부터 유래한다”고 명시하는 ‘일본국헌법’(1946년)으로 바뀌었던 것은 태평양전쟁의 패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20세기 초반의 숨가쁜 국제 정세를 냉정한 시각으로 돌아보는 일은, 일찌감치 일본 식민지로 전락해 어떤 외교적 선택도 할 수 없었던 한반도의 가련한 운명을 절감하게 한다.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세력권을 인정하고 그 대신 일본은 만주의 철도에 대한 러시아의 세력권을 인정하자’는 일본의 만한교환론에 맞서, 북위 39도 이북의 한국을 ‘중립화’하자고 러시아가 역제안한 현실은 한국전쟁 이후 전개된 남북 분단을 암시한다.

이주현 문화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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