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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외면한 질문 ‘어머니의 죽음 딸은 어떻게 애도하나’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시몬 드 보부아르, 아니 에르노의 애도 다룬 <어머니와 딸, 애도의 글쓰기>
등록 2024-06-07 17:45 수정 2024-06-13 18:10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아버지의 죽음이 남성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상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죽음은 딸에게 어떤 경험인가?

프로이트는 이 질문을 무시했다. 애도를 남성 영역에 한정시켜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딸, 애도의 글쓰기>(문학과지성사 펴냄, 유치정 옮김)는 프로이트가 회피했던 어머니의 죽음과 딸의 애도 문제를 다룬다. “사랑했고 때로는 두려워했으며, 선하면서 악했던 어머니, 현존하는 그리고/혹은 부재하는 어머니”라는 가장 원초적 관계이자 가장 복잡하게 연결됐던 최초의 타자를 상실하고 장례 치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프랑스 문학 연구자 피에르루이 포르 세르지파리대학 교수.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1903~1987),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 그리고 아니 에르노(1940~)까지 세 사람을 선택해 정신분석적 방법을 수용하면서 어머니들의 죽음과 딸의 글쓰기를 분석한다.

애도는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그’(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 방식을 재구성하는 정치적인 문제다. 저자는 세 작가의 글쓰기가 죽음을 동력으로 한 서술인 ‘타나토그라피’이며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트랜스페미닌’한 글쓰기라고 규정한다.

먼저 유르스나르는 자신이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어머니가 산욕열로 세상을 떠난 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여겼다. 어머니의 부재는 곧 정신적 외상이라는 전통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친구 잔에게 어머니를 투사하고 잔이 죽자 숭고한 애도를 바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냉담했던 어머니의 무너지는 육체를 보면서 한없이 고통받는 한 존재를 재발견한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신이 쓰러졌다고 생각하고, 연민을 느끼면서 비로소 어머니와 결합한다. <아주 편안한 죽음>은 그에게 심오한 속죄의 방식이었다.

아니 에르노는 셋 가운데 어머니의 상실에 가장 전형적으로 상처받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 사후 그는 어떤 일에도 몰두할 수 없었으며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에르노에게 실연, 낙태, 어머니의 죽음은 동일한 체험처럼 연결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잃어버린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길을 택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며 고통에서 빠져나온다. 부재하는 어머니에 관한 애도의 글쓰기는 작가에게 두 사람 사이를 빠져나오도록 돕고, 치유하는 일이 된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1만8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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