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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간호사는 왜 서양 이름을 썼나

10인의 인물을 통해 본 한국 간호 역사 <한국간호인물열전>
등록 2024-05-10 23:48 수정 2024-05-16 15:04
보구여관 간호양성소 1회 졸업생인 이그레이스(왼쪽)와 김마르다. 대한간호협회 제공

보구여관 간호양성소 1회 졸업생인 이그레이스(왼쪽)와 김마르다. 대한간호협회 제공


1887년 미국 감리교단의 결정으로 서울에 파견된 여성의사 메타 하워드는 한옥 여성병원을 열었다. 조선 왕실은 이 병원을 ‘여성을 편안하게 치료해주는 곳’이라는 뜻의 ‘보구여관’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면서 격려했다. 1893년 어느 날, 이 병원에 본명과 출생연도가 정확하지 않은 한 여성이 찾아온다. 남편에게 폭행당한 여성의 코 일부와 오른쪽 손가락이 잘려져 있었다. 가난한 여성과 어린이를 무료로 진료해주던 보구여관에서 몸을 회복한 여성은 개신교 세례를 받아 마르다라는 새 이름을 얻고 읽기와 쓰기부터 배웠다. 그는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의 첫 입학생이 됐다.

1883년 태어난 이그레이스(본명 이복업) 또한 보구여관에 환자로 와서 일을 돕다가 세례와 간호교육을 받게 됐다. 어느 집안의 사노비였던 그는 다리에 장애가 있었고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주인집에서 쫓겨났다. 김마르다는 졸업 뒤 보구여관에서 간호학 총론, 초급 해부학, 생리학을 가르쳤고 이그레이스는 평양 여성 전문병원인 광혜여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의사의 보조자로도 활동했다.


산파 박자혜는 1895년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궁녀로 입궁해 아기나인으로 생활했고 17살에 숙명여학교에 들어갔다. 일왕의 생일에 배급받은 과자를 발로 밟고 화장실에 버리는 선배·친구들을 보면서 박자혜는 저항의식을 키웠다. 3·1운동에 참여한 그는 중국 베이징으로 유학을 떠나 단재 신채호와 결혼했고 조선으로 돌아와선 산파 일을 시작했다. 신채호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가난 속에 살던 그는 광복을 보지 못하고 50살의 나이에 사망했다.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산파는 정종명이었다. 19살에 아들까지 둔 과부가 된 그는 정우회·근우회·신간회 등 쟁쟁한 사회단체를 설립하는 데 참여했고 조선 여성의 억압을 비판하는 유명한 대중 강연자였으며 최초의 여성 공산당원으로서 일제의 감시와 제재를 받았다. 정종명은 유명 사회주의자 신철(신용기)과 연애하고 동거한 ‘마르크스걸’로도 유명했다. 계급혁명과 여성의 억압적 현실 타개에 골몰하던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그는 해방 뒤 북한으로 갔고 그 뒤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간호인물열전>(책과함께 펴냄)은 한국 초기 간호 역사를 장식한 인물 10명의 삶을 살폈다. 한국 근현대사와 보건의료사, 간호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한국근대간호사> <한국의 과학기술과 여성>(공저) 등을 쓴 이꽃메 상지대 간호학과 교수. 2만8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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