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퀴 더 굴러갈수록 세상이 넓어졌다. (…) 지구 반대편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명확히 안다. 얼마만큼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알아야 내 세계가 커진다는 걸.”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하는 유튜버 김지우가 인터뷰집을 냈다.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휴머니스트 펴냄)는 여성 장애인인 저자가 ‘휠체어 탄 언니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구르님’이 자신보다 먼저 ‘구른님’들을 만나 앞으로 ‘구를님’들을 위해 써 내려간 사려 깊은 에세이다.
일단, 책 모양새가 예쁘다. 화려하고 톡톡 튀게 ‘휠꾸’(휠체어 꾸미기)를 해서 영상을 업로드하는 저자처럼 책 디자인도 경쾌하고 발랄하다. 책 내용은 역동적이다. ‘구루’를 만나기 위해 바퀴를 굴리며 떠난 ‘구르님’의 로드무비처럼 읽힌다. ‘언니들’ 이야기 하나하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험담처럼 안타까우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여성계에서도, 장애계에서도 소수인 ‘장애-여성’이란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공감하고 거리 두고 때론 존경을 표하면서 인터뷰 완급을 조절하는 저자의 영민함과 섬세함도 돋보인다.
김지우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장애여성을 만났다. 장애여성청소년 지민, ‘운동하는 사람’ 성희, ‘무장애 관광 전문가’ 서윤, 영업사원으로 전국을 누볐던 사업가 다온, 무장애 여행작가 윤선, 특수교육학 교수 효선을 만나 장애여성의 몸, 이동, 교육, 스포츠, 사회운동, 늙음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몸에 대한 이들의 감각은 남달랐다. 비장애인들이 자신을 안고 옮길 때가 많으니 가볍고 작은 게 편할 거 같은데, 그래서 살을 빼고 저체중이 되면 건강에 큰 위협을 받았다. 겨울엔 다리가 추위를 감각 못해 동상이라도 입을까봐 두렵고, 옷차림이 두꺼워지는 것도 이동에 어려움을 더했다. 저자는 “장애여성의 몸이 섹슈얼리티와 유리된 무성적 존재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며 “성적 주체와 돌봄 수혜자 사이에서 작고 마른 몸은 비장애인과 또 다르게 해석된다”고 말한다. 아직 장애여성의 몸을 설명하기엔 언어가 현실을 따라오지 못한다. ‘여성’이거나 ‘장애’거나 한쪽 정체성을 없애는 관점으로 여성 장애인의 몸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운동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넘칠 때도 장애인은 예외적 존재였다. 저자는 말한다. “장애의 소멸을 염원하지 않고, 장애가 있는 몸 그대로 강해질 수 있을까.”
장애인은 종종 ‘특별한 아이’ 취급을 받거나 ‘슈퍼 장애인’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장애여성이 출산하고 아이를 기르는 것을 숭고한 것으로 ‘낭만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몸이 불편한데도 무언가를 이뤘다며 슈퍼 장애인 이미지를 씌우거나 장애인을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모두 불편한 일이라고 저자와 인터뷰이들은 입을 모았다.
저자가 미지의 세계에 관한 불안함, 공포를 말하자 ‘언니들’은 몸을 던져보고 활용하라는 충고를 했다. 운동하고, 여행하고, 공부하고, 섹스하고, “겪어보며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라고 했다. 저자는 먼저 구르며 이동하는 언니들을 만나 깨달아가면서 더 먼 곳으로 홀로 여행하기를 원했고, 권한다. “쌓여가는 나는 또 다른 내가 되므로, 우리의 활보가 더는 사치가 아님을 알 수 있으므로.” 저자는 이 책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마무리했다.
2023년 초 저자는 사이버불링을 겪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을 과잉 진압하는 공권력에 항의한 글이 캡처되어 ‘좌표’로 찍혀 악플이 쏟아졌다. 유튜브 채널, 소셜미디어 계정까지 찾아와 괴롭혔다. 그는 인터넷을 끊는 대신 글을 읽고 인터뷰집을 읽었다. 사흘 정도 지난 뒤 공격이 사라지는 걸 보고 장애인 활동가를 비난하는 일이 유희거리나 학습된 분노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만이 꾸준할 수 있다. 미움은 절대 꾸준할 수 없다. 오직 꾸준한 것만이 내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실망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온 ‘60대 언니’ 효선은 말했다.
“사회를 깨라. 어떤 면에서 이미 우리는 장애라는 걸로 비장애인들의 사회를 깼어. 그러니 멋있게 더 깨라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사회적인 분위기라는 게 있어서 쉽지 않지만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 돼. 누군가는 시작해야 해요. 그렇다면 그게 바로 후배 당신이면 좋겠는 거야.”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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