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지 않으셨습니까?”
성난 소작농들이 길을 가로막았다. 1880년 아일랜드 벨파스트 인근의 시골. 미국에서 온 동물수집가 데이비드 호나데이는 골격을 만들어 본국에 가져가려고 늙은 나귀 네 마리를 사둔 터였다. 길가에서 당나귀를 죽이고 해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농촌 마을에 가득 퍼졌다.
나귀가 난도질당하는 모습을 보고 가톨릭 신자인 소작농들이 들고일어났다. 군중은 1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호나데이는 7년 뒤 쓴 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가련한 짐승이 자신들 앞에서 죽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의 깊은 마음이 전해져, 더 이상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삽자루를 들고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호나데이는 근처의 헛간으로 피신해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인간, 개, 말… 노동하는 생명들왜 소작농들은 당나귀 도살에 분개했을까? 생태사학자인 제이슨 라이벌은 당나귀와 농민 사이에 희미한 감정이입의 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억압받는 생명체로서의 연대감 같은 거 말이다.
또 하나, 농민과 당나귀는 ‘노동하는 생명체’로서 공통점이 있다. 1만 년도 훨씬 이전에 개가 인간 사회에 들어온 이후, 동물은 인간을 위해 일했다. 개에 이어 양과 염소, 소, 돼지 그리고 말과 낙타가 차례로 가축이 됐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무거운 짐을 들고 인간의 노동을 대신 하다가 죽어서는 제 몸을 고기로 바치며 봉사했다. 가축의 역사는 노동하는 생명의 역사다. 북극의 썰매개는 언 바다를 허덕이며 뛰었고, 히말라야의 야크는 소금을 지고 눈 덮인 산을 넘었다.
‘고용주 인간’과 ‘노동자 동물’의 관계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온 건 근대 자본주의가 출현하고부터였다. 전근대에 인간과 동물은 개인과 개체로 만났다. 일을 시키는 관계였지만 서로 부대꼈으며 희로애락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 들어 동물에게 일을 시키는 행위는 산업화됐다. 막대한 노동자를 만들기 위해 동물을 대량 번식시켰다. 동물은 자본주의의 부속품이었다. 피로에 지친 산업역군이었다.
동물이 없었다면 자본은 순환하지 않았다. 자동차와 버스, 기차가 도시를 뒤덮은 것은 사실 100년도 되지 않았다. 내연기관이 대중의 일상으로 확산되기까지, 도시를 움직인 건 동물의 근육이었다. 20세기 초 미국 도시에서 사람들을 실어나르던 말과 당나귀는 3500만 마리에 이르렀다. 19세기 초에 견줘 6배나 늘어났다. 인구가 10만 명 이상인 도시에는 평균 15명당 말 한 마리가 있었다.(브라이언 페이건, 참고) 유럽과 미국의 도시들은 실핏줄처럼 연결됐고, 자본가와 노동자를 동물이 실어날랐다. 자본주의의 컨베이어 벨트는 자꾸만 빨라져갔다. 지금 자동차가 버스와 경차, 트럭과 스포츠실용차(SUV)로 분화되었듯이, 말도 마찬가지였다. 직행 마차, 장거리 마차, 야간 마차가 생겼다. 짧은 거리를 반복해서 뛰어다니는 말, 지구력이 강해 장거리를 뛰는 말 등 운송업자들은 필요에 따라 말을 골랐고 교배했고 훈련했다.
인간이 말을 지배하는 데 이용한 수단은 폭력이었다. 말은 채찍질과 발길질을 당했다. 19세기 말, 마차용 말의 수명은 이미 3∼4년으로 줄어들었다. 말은 한 번 태어나 죽도록 달리다 죽는 신세였다.
‘쇼’ 빨리 끝내는 돌고래들현대사회에서 동물의 노동은 다양화·전문화됐다. 교육, 서비스, 엔터테인먼트 등 크게 세 분야에서 일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선 게 서커스, 경마,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동물은 ‘살아 있는 자본’으로 기능하며 가치를 창출한다고 페미니스트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말한다.
몇 년 전에 미국 플로리다주 시월드 올랜도의 범고래쇼를 본 적이 있다. 돌고래 전시공연 산업의 선두주자인 시월드는 자체 제작한 영화와 음악 그리고 동물의 안무를 더해 쇼를 대형 뮤지컬처럼 이끈다. ‘스펙터클’의 주인공은 길이 7∼8m, 무게 8∼10t에 이르는 범고래다. 꼬리로 인사하고, 관객에게 물을 튀기고, 잠영하였다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5500석 객석을 꽉 채운 관중은 함성을 질렀다. 돌고래는 현대판 노동하는 동물의 최첨단에 서 있다.
나는 거대한 몸의 스펙터클에 감화되어 세 번을 내리 봤다. 그러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세 번째 공연이 무척 짧고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범고래들은 점프를 하다 말았고, 물도 무성의하게 튀겼다. 쇼를 하는 둥 마는 둥 딴전을 부렸다. 쇼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
돌고래 사육사라면, 이들이 일부러 그랬다는 걸 알 것이다. 세계 어느 돌고래쇼에서든 이런 광경은 펼쳐진다. 이를테면 1번, 2번, 3번…10번 묘기까지 순서가 예정되어 있다면, 돌고래들은 1번 묘기가 끝나면 2번 묘기가 시작되는 지점에 가서 기다린다. 수없이 공연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다음에 뭘 할지 잘 안다. 어떤 때에는 1번, 2번, 3번을 하다가 갑자기 4, 5, 6번을 빼먹고 7번 지점에 가서 뻔뻔하게 다음 지시를 기다린다. 이렇게 해서 노동량을 줄인다. 이런 행동은 보통 돌고래 집단의 리더가 주도한다. 돌고래들이 언제나 조련사의 지시를 철두철미하게 따르는 건 아니다. 시시때때로 반항하고 태업한다.
르네 데카르트 이후 우리는 동물을 기계처럼 생각했다. 심리학계의 주류인 행동주의학파도 동물이 보상과 처벌로 조작적 조건을 형성하는 단일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가정했다. 쉽게 말해 먹이와 채찍으로 동물을 지배할 수 있다고 봤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
마부와 말, 유대의 중요성다시 100년 전 마차의 시대로 돌아가보자. 도시의 말들 역시 자본주의에 순순히 복무한 건 아니다. 말은 2~6마리가 한 팀이 되어 마차를 끌었다. 그런데 한 마리가 지쳐 떨어져나가면, 운송업자는 애를 먹었다. 신참 말을 넣어야 하는데, 호흡을 맞추면서 사고가 빈발했기 때문이다. 지나친 혹사는 늘 사고를 불렀다. 겁먹은 말은 복잡한 거리에서 엉뚱한 곳으로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말이 항상 마부의 명령을 고분고분 따른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천천히 가거나 어떤 때는 안 가고 버텼다. 성난 말의 발길질에 다치는 사람도 생겨났다. 동시에 마차 전복과 부상·사망 사고도 늘어났다. 잦은 사고는 회사의 평판과 이윤을 떨어뜨렸다. 1872년에는 미국 뉴욕에서 캐나다 토론토까지 가축전염병이 돌았다. 수주 동안 대중교통이 중단됐다. 시민들은 말을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말 한 마리가 서울 도심을 휘젓고 다닌 사건도 있었다. ‘차마의 대폭행’이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가 전해진다.
“남미창정(현 서울 중구 남창동) 앞에서 경성부 위생계 마부 리운룡(40)이 쓰레기를 잔뜩 실은 마차를 길거리에 그냥 두고 잠깐 뒷골목으로 들어간 사이에 말은 무슨 생각을 하였던지 와락 뛰어 짐을 실은 채 달려가기 시작하여… 유정정미소의 판장과 충돌하여 산산이 깨뜨리고… 대총영(24)의 점방 앞에 놓인 자전거 두 채를 깨뜨려 15원의 손해를 내고… 두 명을 박차서 경상을 당하게 하고… 남대문시장 부근에 정지했다.”( 1923년 7월9일)
마차 회사는 마부와 말의 유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이 저항하면 장사를 망쳤으므로, 말을 험악하게 다루지 말 것을 요구했다. 말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수십 대의 마차가 오가는 시끄러운 거리에서 말은 자신과 호흡을 맞추는 마부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했다. 말의 노동시간을 하루 5시간으로 제한하는 회사도 생겼다. 이런 지배 기제는 인간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과 빼닮았다. 초기 자본주의 도시 노동자에게는 지저분한 운하와 진흙탕 길, 쓰레기 더미로 둘러싸인 골방에 돌아가 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8시간 노동제가 보편화된 건 20세기 들어서였다. 노동자가 태업하고 파업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폭정이 생산성에 좋지 않다는 걸 회사가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살아 있음’과 ‘행동 가능성’카를 마르크스는 노동하는 주체를 ‘인간’으로만 봤다. 기계처럼 동물은 도구였다. 전원을 켜면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동 과정에서 동물에게는 기계와 비교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있다.
기계는 스스로 오작동하거나 전원을 끄지 못한다. 그러나 동물은 기계와 달리 ‘살아 있음’과 ‘행동 가능성’을 무기로 쓸 수 있다. 마치 노동자가 파업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기에 권력을 갖듯이, 노동하는 동물도 말을 듣지 않을 수 있기에 권력이 있다. 시월드 올랜도의 범고래 ‘틸리쿰’은 종종 공연을 거부하고 사고를 쳤다. 2010년 조련사를 공격해 숨지게 하면서, 돌고래쇼 반대 운동의 방아쇠를 당겼다. 시월드는 경영 위기에 빠졌고, 지난해 범고래 번식 중단을 선언했다.
인간이 동물의 노동을 지배하는 데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쓰인다. 첫째는 보살핌이다. 잠잘 곳을 주고 먹이를 준다. 서로를 알아보는 지속적인 관계도 쌓아야 한다. 둘째는 압제다. 울타리를 치고 고삐를 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채찍질한다. 가둔다. 굶긴다. 죽인다. 셋째는 ‘밀당’(밀고 당기기)이다. 인간은 으르고 달래면서 동물과 ‘협상’해야 한다. 친절히 대하지 않으면, 돌고래는 공연을 거부하고 말은 마차를 내팽개친다.
18세기 막장을 기던 영국 탄광 노동자처럼, 열악한 야생동물 카페와 강아지 공장, 동물원, 수족관에서 동물은 지금도 막장을 긴다. 그러니 자본가들이여, 동물을 찍어눌러서만은 안 된다. 밀당의 기술 없이 폭정만 휘두르면, 틸리쿰처럼 당신을 망하게 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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