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정책에 한정해 말한다면, 국가는 이미 실패했다. 물론 최선을 다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를 평균값으로 계산한 ‘합계출산율’은 잠깐 주춤하다 계속 줄어든다. 올해는 기록적으로 낮은 수치인 1.05가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머잖아 합계출산율이 1 이하로 내려가지 않을까 우려한다. 기우가 아니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이미 0.94로 내려갔다. 구별로 보면 관악구는 0.77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서울은 진짜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육아 정책의 가장 큰 실패는 무엇 때문일까. 일하는 엄마들의 수요를 맞추지 못한 탓이다. 좋든 싫든 많은 부모가 영·유아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15년 기준 한국에서 만 5살 미만 영·유아 시장의 규모는 3조4천억원 정도다(육아정책연구소). 이에 비해 영화산업의 규모는 2조원을 약간 넘는다. 텔레비전만 틀면 주야장천 나오는 한국 영화, 동네마다 알토란같이 입지 좋은 곳에 몇 개씩 서 있는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 이것을 다 합친 규모보다 영·유아 사교육 시장이 크다. 이젠 1년에 40만 명도 태어나지 않는 영·유아를 위해 부모들이 순수하게 쓰는 돈이 3조4천억원, 어마무시한 규모다.
추세로 보면, 중학교 사교육이 고등학교 사교육보다 돈이 더 많이 들고, 그보다 영·유아 사교육에 더 많이 드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1~2년 안에 고3 사교육비보다 만 5살 유아에게 쓰는 사교육비가 더 많아질 것이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경우 정규 수업 뒤 추가 수업에 드는 돈이 약 120만원, 오후 6시까지 아이를 맡기기 위해 학원 한 곳을 더 다니면 150만원 넘게 든다.
의료산업 가운데 중독성이 가장 심한 것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돈이 안 되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보다 돈이 되는 다이어트 쪽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게 국제기구의 고민이 된 지 벌써 몇 년이다. 부모 처지에서 사교육은 다이어트만큼 중독성 강한 상품이다. 일단 구매하면 더 많이, 고강도로 구매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이것은 그냥 학대다. 성인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정해놓았을 때의 기본 논리가 ‘노동자 인권’이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죽어라 공부를 강요하는 것. 이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아동학대다. 최근 많이 논의되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교육, 특히 영어 사교육과 관련해 참고할 만한 외국 사례가 있다. 대만에선 유아 스트레스와 정신병이 사회문제가 되니 영어 과외를 아예 법으로 금지했다. 한국 어린이들은 유독 정신력이 강한가? 아닐 것이다.
독일 등 북유럽에서 꿈의 교육기관으로 평가받는 곳이 ‘숲속 유치원’이다. 자연에서, 즐거운 놀이 속에서 아이들 스스로 배울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 요즘의 교육 트렌드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한국은 3조4천억원짜리 영·유아 사교육 시장을 위해 아동학대를 방치하는 아동학대 국가다.
우석훈 경제학자<font size="2">*‘경제학자 아빠의 한푼두푼’ 연재를 마칩니다. 칼럼을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font>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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