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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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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싫어하는 나라

1960년대 미국 공연장 ‘흑인존’ 연상시키는 ‘노키즈존’
등록 2017-08-09 22:08 수정 2020-05-03 04:28

론 하워드는 영화 로 전세계적 흥행 감독이 되었다. 그는 지난해 뜬금없이 다큐멘터리 를 발표했다. 며칠 전 케이블방송에서 우연히 비틀스 다큐를 보며 덜컥 충격받았다.
1964년 9월11일, 비틀스에겐 운명의 날이었다. 비틀스가 밴드로 더 이상 공연할 수 없는 결정적 계기가 된 날이다. 1964년은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흑백 갈등이 극한으로 내달리던 때다. 흑인 활동가 3명이 실종돼 결국 주검으로 돌아왔다. 플로리다 잭슨빌은 인종차별의 중심지였다. 미식축구 경기가 종종 열리던 잭슨빌 스타디움은 백인존과 흑인존을 따로 운영했다. 한창 인기 있던 비틀스 멤버 4명은 회의를 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공연 계약서에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것을 집어넣었다. 그날은 흑백 차별을 없앤 역사적 공연이 되었다. 잭슨빌 스타디움은 이후 흑인존을 철폐했다.
그러나 이 얘기는 바로 해피엔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미국 백인들의 마음을 건드린 비틀스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존 레넌의 ‘예수 발언’과 함께 더는 공연할 수 없을 정도로 몰락해간다. 레넌이 스스로 예수와 동급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마음 상한 미국 백인들에게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66년 8월 비틀스의 샌프란시스코 공연은 관객 난동으로 완전히 실패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비틀스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최근 ‘노키즈존’이 유행이다. 4살·6살 두 아이의 아빠인 나는 잭슨빌 스타디움에 있던 흑인존으로 들어가야 할 상황이다. 백인존? 안 된다. 아이가 태어난 뒤 여러 차별 안에서 살아간다. 한국 성인들이 이 정도로 아이를 싫어하는지 미처 몰랐다. 물론 나도 모든 미술관이나 극장에 아이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지 않다. 그렇지만 ‘키즈’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심한데 이제는 대놓고 차별하겠다니, 맘이 편치 않다. 모든 차별에는 약간의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동시에 문화적 편견도 존재한다.
한국의 부모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유아용 상품을 구매할 때, 사교육과 학습지 구매에 돈지갑을 열 때만 잠시 환영받는다. 한국의 ‘키즈’와 부모들은 잭슨빌 스타디움의 흑인존에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젠 대놓고 차별하겠단다. 물론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곳에는 나도 안 간다. 잭슨빌의 흑인들이 더럽고 치사해서 백인존에 안 갔던 것과 정서적으로 같은 상황이다.
사람 사는 곳엔 이런저런 이유로 차별이 생긴다. 그렇지만 차별의 공식화와 상업화는 성숙한 사회가 갈 길이 아니다. 아이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벌레 소리 듣고 벌레 취급 받는 게 옳은가? 지금 우리는 1964년 잭슨빌 스타디움에서 비틀스에게 던져진 철학적 질문 앞에 서 있다.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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