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살·6살, 두 아이의 아빠다. 밤 11시, 아이들이 잘 자는지 방에 들어가보았다. 형과 동생, 엉망으로 누운 두 아이가 손잡은 채 자고 있었다. 다른 집 아이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가끔 손을 잡고 잔다. 돌 지나 자녀를 따로 재우고 각방을 주는 미국식 육아에선 보기 어려운 모습일 것이다.
손잡고 자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래도 세상이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낮 시간에 두 형제가 늘 행복하고 편안한 모습만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형은 자기 장난감을 동생이 만지지 못하게 고집을 피우고, 동생은 손에 쥔 것을 다시 안 빼앗기려 안간힘을 쓴다. 이따금 갈등이 격렬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아이들에게 손들기 벌을 세운다. 이렇게 형제는 티격태격하며 가장 친한 친구로 나이 들어갈 것이다.
사람의 삶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나뉜다. 사적 영역을 움직이는 최대의 힘은 여전히 사랑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적 영역을 움직이는 힘은? 한쪽에 돈과 권력이 있고, 다른 한쪽에 정의와 올바름이 있다. 그리고 가끔 재미와 관련된 것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 방송 포맷으로 자리잡은 그룹토크, 일명 ‘떼토크’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선에서 재미를 추구한다. ‘공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공과 사의 경계는 모호하고 때로 그것이 숙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공적 영역에서 우리는 정치, 부당한 권력, 인권과 생태의 문제, 분단 조국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일은 드물다. 공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사랑 이야기는 국가나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 즉 애국심이나 향토애인 경우가 많다. 애국심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지난겨울 등장한 ‘태극기집회’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고향에 대한 사랑은 새만금 개발처럼 지역 ‘숙원 사업’ 형태로 종종 등장한다. 이것들은 공적 자리에선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삶의 공간에선 그리 간단치 않다. 한겨울 헌법재판소 앞에 선 ‘태극기 할아버지들’ 무리에 나의 아버지가 계셨다. 언젠가 지금 손잡고 자는 저 두 아들이 나에게 ‘급진좌파’ 혹은 ‘생태근본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21세기 들어 경쟁에 대해 무수히 많은 담론이 벌어졌다. 시장주의가 더 강해지면서 경쟁의 효용성 등 위험한 주제를 논의하게 된다. 그러나 경쟁의 또 다른 축인 사랑에 대한 얘기는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질문해본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가? 지난겨울 촛불집회가 끝나고, 대선을 치렀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과연 증오·대결하는 시대를 종료하고 더 많이 서로 사랑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가? 끔찍하게 퇴행적인 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우린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야 한다. 미워할 이유를 성토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부었던 시대를 지나, 서로 사랑할 이유를 더 많이 얘기하는 공적 영역이 되었으면 좋겠다. 손잡고 잠이 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해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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