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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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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할까

너와 나의 피를 집요하게 구분하는 세태에 본격적인 ‘물타기’를 하자
등록 2017-05-28 15:53 수정 2020-05-03 04:28
대안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했던 입양수업. 정은주

대안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했던 입양수업. 정은주

“엄마는 나를 돌보는 게 감당이 돼서 입양한 거 맞아?” 때로 다엘이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다. 이 말에 나의 장황한 스토리텔링이 시작된다. “사람 하나가 태어나기 위해선 우주의 수많은 요소가 모인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거야. 네가 태어날 결심을 하지 않았으면 이 세상에 올 수 있었겠어? 태어나지 않았으면 입양도 안 됐겠지.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입양은 네 책임이야.” 억지라며 반항하던 다엘이 선심 쓰듯 말했다. “좋아, 그럼 책임은 반반인 걸로 해.” 내가 대꾸했다. “알았어. 내가 양보한다.” “아니, 그게 무슨 양보야!” 결국 다엘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집에서 입양이 가벼운 화제가 되기까지는 지난 역사가 있다.

초등 2학년 때 다엘의 학급 아이가 ‘네 엄마가 너를 돈 주고 사왔지?’ 하고 다엘을 놀린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다엘의 학급에서 입양수업을 하게 되었다. 먼저, 우리 집은 다엘이 오기 전에도 이미 입양가족이었음을 알려주었다. 나의 할머니, 즉 다엘의 증조할머니가 입양된 분이었으니 예전부터 우리 가족은 입양가족이었다고. 이어서 물었다. “이 중에 다엘 말고도 입양된 친구가 있을까?” 없다는 대답에 다시 질문했다. “그럼, 엄마 아빠 중에 입양된 분이 있을까?” 없을 것 같다고 하여 또 물었다.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는?” 잘 모르겠단다. “너희 가족 중 누군가 입양된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있을 것 같다고 아이들이 입을 모았다.

이후 나는 입양을 말할 때 ‘물타기’가 매우 중요한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저 애는 입양아야’, 이런 시선에 물타기를 하면 ‘우린 모두 입양가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과거 역사에서도 숱한 전쟁과 재난으로 입양은 흔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우리 몸속에 도도히 흐르는 것은 입양인의 피다. 누구나 근본적으로 입양된 자가 아닐 수 없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써 너와 나의 피를 집요하게 구분하는 세태에 대해, 본격적으로 물타기를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내가 속한 입양가족 모임은 ‘물타기 연구소’라는 명칭을 정하고, 혈연 중심주의 속 미신에 대해 지속적으로 물타기를 하자는 각오를 나누었다.

핏줄 얘기가 나올 때면 내가 언급하는 사건이 있다. 2년여 전 에 ‘프랑스의 바뀐 아기와 모성애에 대한 교훈’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출산 당시 병원 쪽의 실수로 바뀐 아이를 키우던 부모들이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됐으나, 양쪽 가족은 아이를 그대로 키우기로 하고 서로 다시 만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중 한 어머니는, ‘나의 생물학적 딸은 나를 닮았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사람을 낳았다는 것과, 더 이상 그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가족을 만드는 것은 피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쌓아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사에서 ‘모성애에 대한 교훈’이라는 제목을 뽑은 기자의 혜안이 돋보인다. 하나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피로 맺어진 원초적 관계에 대한 믿음이 미신일 수 있다는 문제 제기 아닐까? 입양에 대한 편견도 이런 식으로 하나씩 짚어봐야 하리라.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사진과 글의 일부는 한겨레 육아웹진 ‘생생육아’ 2017년 3월20일치 본인의 글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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