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다’ ‘핥다’. 생김새가 비슷하다. 가만히 입안에서 굴려본다. 알타, 할타. 음도 닮았다. 앓으니 핥는 건가. 대척점에 서 있는 두 단어의 유사점을 발견하니 피식, 입에서 절로 바람이 샌다.
떠올려본다. 얇은 종잇장에 손가락을 베었을 때를. 깨진 상처에 본능적으로 혀를 가져다 댄다. 그리고 찬찬히 핥는다. 이깟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떠올려본다. 한 세계를 처음 맞닥뜨린 새끼에게 어미 개는 가장 먼저 혀를 갖다 댄다. 그러곤 온몸 구석구석 훑는다. 앞으로 마주할 시련은 너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한다는 듯이. 혀의 쓰다듬기에 마음 한쪽 훈기가 돌아본 사람이라면, 마음을 앓을 때 책의 어루만짐도 촉각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여기 “마음이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져내리는 날, 책의 얇은 종잇장을 붙들고 다시 올라오는” 남자가 있다. “살아갈수록 더 아프고 외로운 인생”을 “아름답게 버텨내고 견뎌내는 건 문학을 읽는 것”이라 여기며 아프도록 문학에 빠진 사람이다. 독서생활자로 불리기 원하는 (책읽는수요일 펴냄)의 저자 임재청은 문학의 맛을 온몸으로 느낀 사람이 분명하다. 고전 세계문학 속 주인공의 삶을 좇으며 깨달은 것을 공유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책의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미 숨진 옛 소설가가 써놓은 “밑줄을 긋고 메모하며 찾아낸 변함없는 진실”을 미래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마치 생의 사명인 것처럼.
저자는 제목만큼 군더더기 없이 솔직하고 소박한 언어들을 책에서 잔잔히 풀어놓는다. 세계문학 32개 작품을 ‘사랑’으로 시작해 ‘성장’, ‘소외와 저항’, 가치를 거쳐 ‘구원’으로 끝나는 5개 장으로 나누어 모았다. 문학을 사랑했고(챕터 1), 문학을 통해 자기 존재 가치(챕터 4)를 확인했으며 이를 통해 인간사의 고통에서 구원(챕터 5)을 얻었다는 일종의 자기 고백인 셈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샬럿 브론테의 편에서 저자는 “자신의 영혼을 당당히 간직하는 사랑”을 읽고, 제인 오스틴의 에선 “사랑을 저울질하는” 허영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깨닫는다.(‘사랑’ 편) 영국 런던에서 주식중개인으로 안정된 삶을 살다 어느 날 느닷없이 화가가 되겠다며 프랑스 파리로 떠난 찰스 스트릭랜드를 다룬 소설 서머싯 몸의 편은 어떤가.(‘성장’ 편) 이 글 속에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고뇌하는 저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작품에 대해 남긴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란 평가는 글쟁이로 밥벌이하고 싶어 하던 저자 자신에게 던지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도 미칠 정도로 자신의 욕망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짜로 위대한 일이라고. 각 장마다 풀어놓은 짧은 에세이는 폐허 같은 삶을 버텨내는 나와 당신에게도 적잖은 ‘위로’가 된다.
문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위로는 제각각이니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책장에 넣어뒀다가 몸과 마음이 녹진하게 내려앉는 날,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원하는 부분을 골라 읽으면 된다. 그다음 작가의 처방전 목록에 있는 고전을 읽은 뒤 “생의 변함없는 진실”을 발견하면 그걸로 될 일이다.
인간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는 나는 내 안의 상처를 핥으려 다자이 오사무의 을 다시 펴든다. 당신은 어떤 위로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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