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웃자고 죽자고

등록 2016-11-17 17:27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우주에 가기 위해 정색하고 훈련받을 때, 기자란 직업을 가진 이들은 떼로 대통령의 굿을 좇고 있다. 전국 팔도에서 굿 좀 한다는 사람들의 이름을 메모해둔다.

그들은 왜 다 개명했을까. 당나라 태종의 이름이 이세민(599~649)인데 정윤회가 ‘그 시간’에 만난 사람은 왜 하필 이세민일까 생각해본다. 누군가 박근혜 대통령을 ‘선덕화’(선덕여왕 ?~647)라고 부른다는 말이 떠올라 무릎을 탁 친다.

최종 추락 지점은 어디인가

지금, 웃기는 사람은 누구인가. 기자들이 사이비 종교의 역사를 훑고 행여 실마리가 있을까 꾸역꾸역 오방색을 살펴보는 건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이해하려 해도 혼이 비정상되는 경험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며칠 안 돼 그런 것들이 기사가 된다.

이뿐만 아니다. 지금 각 언론사에서 내로라하는 취재기자들이 ‘시술’을 연구하고 있다. 줄기세포도 연구하고, 광우병도 공부하고 최근에는 사망진단서도 심도 깊게 분석했지만 미용 시술에 대해 이처럼 진지하게 가설을 세우고 탐사해보는 날이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강남에 있는 성형외과와 피부과에서 깊숙한 취재원을 찾기 위해 수소문하는 기자들의 피로감과 다크서클은 프로포폴을 맞아야 해결되는지, 아니면 리프팅이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논란이 처음 나왔을 때, 한 편집국 기자가 “미르와 K를 합치면 미륵이 아닌가. 그것은 최태민이다”고 말해 깔깔대며 웃었다. 그런데 한 달여 뒤 제3당 원내대표가 그 말을 공식 석상에서 해버렸다. 그게 웃겼던 건 그런 상상력의 지평이 최소한의 합리성마저 깔끔하게 말아먹는 해학이었기 때문인데, 이제는 정말 그런 게 아닐까 싶어 몸이 부르르 떨린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사이비 종교”를 거론하고 “굿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순간 전율이 왔다. 그따위 얘기를 왜 해명하는가. 그걸 입에 담느니 차라리 ‘세월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말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일이 이 지경까지 번졌는데 왜 대통령은 ‘그 시간’을 말하지 못하는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날들이다. 잘못은 대통령이 했는데 추락하는 것은 시민들의 자존감이고 내가 믿은 세계 그 자체이다. 날개가 없어 짜릿하지도 않고 최종 추락 지점이 어디인지 도통 몰라 불안할 뿐이다. 내일은 얼마나 더 까발려질지 신경질만 늘고 점점 참담해진다.

어느 순간부터 뭘 더 아는 게 끔찍하단 생각마저 든다. 기자 생활 하면서 처음인 것은 물론이고 호기심이라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알게 된 이후 처음 겪는 생경한 감정이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얘기처럼 대통령이 그때 그런 일들을 한 게 확인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 잘못 뽑은 이유로 생때같은 죽음들이 지금까지 야박한 대접을 받는 것이라면 그 죗값을 어떻게 질 수 있을지 아득하다.

다시, 광장이다

도 아닌데 계속 ‘끝판왕’이 경신된다. 최순실이 저지른 일을 다 밝히기도 숨 가쁜데, 최순득이 나오고 장시호가 등장하고 장승호까지 어른거린다. 세상 모든 것과 공적으로 소통하길 꺼리던 대통령은 사적으로는 꼼꼼하게 유사 가족의 성형외과 담당 의사까지 챙겨왔다. 지금껏 세상을 지탱해왔다고 믿었던 합리성은 총체적으로 붕괴했다. 오늘을 어제의 질서로 살았다고 내일도 오늘의 관행을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다시, 광장이다. 진부하다고? 아니 진짜로 이것밖에 없다. 쓰게 웃었지만 죽자고 달려들어야 끝낼 수 있다. 여의도 문법에만 밝은 충실한 장사치의 셈법은 탈진을 가속할 뿐이다. 웃자고 우주에 가는 시대, 죽자고 광장에 서면 우리도 웃을 수 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