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 시끌시끌하다.
“대략 3m 정도 크기의 스크린이 있고, 세 부분으로 나뉘어 영상이 나타나네요.”
“첫 번째는 비가 오고 있는 모습, 두 번째는 사람들이 물로 뛰어드는 모습.”
“뛰어든 물은 별로 깨끗하지 않네요.”
감상하는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듣고 시라토라 겐지는 질문한다. “물로 뛰어드는 사람은 어른인가요? 아이들인가요?” 시라토라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지금 여섯 명의 사람들과 그룹지어 그림을 관람하고 있다. 이른바 ‘소셜뷰잉’(Social Viewing). 질문하고 답하며 작품을 공유한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시각장애인이 ‘촉각’이 아닌 ‘언어’를 통해 미술을 감상하는 ‘시각장애인의 미술감상 워크숍’이 무려 20년 전에 생겼다.
(에쎄 펴냄)는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갖는 다양한 편견과 잘못된 고정관념을 하나하나 무너뜨린다.
지은이 이토 아사는 생물학자를 꿈꾸다 대학 3학년 때 전과해 미학과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도쿄공업대학 리버럴아트센터 교수로 일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시각장애인을 ‘결함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눈이 보이는 사람과 다른 신체를 가진 존재’로 바라본다. 원래 그는 덩치가 큰 코끼리가 체감하는 시간과 개미가 느끼는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매료돼 생물들의 상대적 세계를 이해하고자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다. 이제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세계와 그들의 감각을 ‘상대적으로’ 재현하는 데 골몰한다.
이토 아사가 알려주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세계’는 불편한 점도 있지만, 다르고 매력적이다. 공간 인지 방식이 대표적이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공간을 파악한다. 지은이가 전철역에서 연구실까지 가는 길을 그저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가는 경로만으로 인식할 때 시각장애인 기노시타 미치노리는 “산에서 내려가는 내리막길”로 파악한다. 실제로 그 길은 밥그릇을 엎어놓은 모양의 지형이었지만, 보이는 사람이 길가의 여러 간판·가게 등에 현혹돼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반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지팡이의 감촉, 발의 감촉으로 길의 폭과 방향 등을 그려내 ‘입체적으로’ 공간을 파악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시각의 결함을 다른 감각으로 보충하는 게 아니다. 아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파악한다. 예컨대, 차를 탔을 때 엉덩이로 느껴지는 진동을 통해 울퉁불퉁한 도로를 파악한다.
이렇게 ‘결함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로서 보이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면,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보이는 사람도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예술이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적인 것”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작품 감상”을 할 수 있게 된다. 장애란 다리 하나 없는 의자가 아니다. 세 개의 다리로 균형을 잡는 ‘다른 의자’일 뿐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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