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고 싶지만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렵다. ‘나는 병신’ 자학은 하지만 남이 ‘너 병신’ 욕하는 건 못 참는다. 끝없이 남과 나를 비교해 괴로워하거나 통쾌해한다. ‘관심 병자’로 가득 찬 자기과시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피로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인간관계를 잠식한다. 가면을 벗고 싶지만 가면 벗은 나를 대면하기 두렵다. 이미 어른인 스스로를 ‘철없다’는 말 속에 가두고 ‘철든 사람’에게 손가락질한다. 막연하고 불안한 미래와 뻔한 삶 사이에서 갈등한다. 꿈이 없지만, 꿈 없는 또 다른 친구가 옆에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차라리 젊지나 말 것을일러스트레이터 김인엽이 온라인에 올리는 4컷짜리 짧은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대체로 그런 젊은이다. 만화 속 화자이기도 한 김인엽은 경기도 산본이라는 신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산본 1세대’를 자처하는 한국의 20대 남자다. 그는 단순 명료한 그림 속 적나라한 풍자와 위트로 지금 시대의 청년상을 담아냈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이에 공감하는 동시대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얼마 전 가수 김창완이 TV에 나와 최근 에 삽입돼 다시 인기를 끈 산울림의 노래 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다가, 김인엽 만화의 주인공이 지금 이 노래를 부른다면 뭐라고 부를지 궁금해졌다.
김창완은 애초 의 가사는 지금과 달랐다고 했다. 1981년 심의 당시 “너무 슬프다”는 이유로 검열에 걸려 가사가 바뀌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은 원래 이렇게 쓰였다. “갈 테면 가라지/ 푸르른 이 청춘”
처음과 달라진 가사는 여기 말고도 두 군데가 더 있다. 2절의 마지막, “정 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 동산 찾는가”는 본래 “정 둘 곳 없어라/ 텅 빈 마음은/ 차라리 젊지나 말 것을”이었다.
한두 표현이 미묘하게 달라졌을 뿐인데, 노래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갈 테면 가라’는 젊음 특유의 ‘될 대로 되라’식 패기는, ‘언젠간 가겠지’라는 온건하고 보편적인 체념으로 바뀌었다. ‘텅 빈’ 상태의 절망에서 ‘차라리 젊지나 말지’로 이어지는 자신의 젊음에 대한 저주는, ‘허전한 마음’으로 ‘정답던 옛 동산’을 찾는 체제 순응적 정서로 변색됐다. 시대는 사회 곳곳에서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실제로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놓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 ‘청춘’이란 단어는 패기도 체념도 아니고, 조롱에 가까운 의미로 해체되었다. 병적으로 열정지향적인 온도로 착색되거나, ‘의지 드립’(“의지의 차이^^”식으로 모든 실패의 이유를 ‘의지와 노력 부족’으로 여기는 세태를 비꼬는 반어적 표현)과 같은 활용법을 갖는 처지가 돼버렸다.
김인엽의 만화 속 청년이 마음을 건드리는 건, 그가 그런 이 시대 청춘의 양태를 그대로 담은 채, 시대가 기획한 트랙에서 비껴난 청춘이 갖는 가능성의 틈을 열어보이기 때문이다.
조롱의 의미로 해체된 푸른 날한 에피소드. 빨간머리1이 앞에 서 있는 벽을 가리키며 말한다. “잘 봐둬라 이것이 우리의 한계다.” 빨간머리2가 말한다. “아하! 그렇군요, 전 총명해서 무슨 말씀이신지 탁! 하고 알겠어요.” (그 옆, 파란머리가 “어버버” 하며 걷고 있다.) 빨간머리1이 “아하하, 이 청년이 아주 똑똑한걸? 그럼 가서 술 한잔 마시며 내 인생 이야길 들려주도록 하지” 말하니, 빨간머리2는 “와! 영광입니다” 하며 그를 따라간다. 빨간머리2는 속으로 ‘저걸 어떻게 넘어 무서워라’ 생각한다. 혼자 남은 파란머리는 계속 “어버버 어버버” 하며 지렁이처럼 무심하고 부드럽게 벽을 넘는다. 그리고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
‘멋진 외교관’도 ‘치킨집 사장님’도 아니고 “(자신이) 이 그룹에서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 ‘꼬마 친구’는 남이 들어다 앉혀준 주인공 자리에 관심 없다. 그는 어찌어찌 자신의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벽을 넘기도 한다. “청춘이라니 어버버 어버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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