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멈췄다.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도호쿠 대지진, 그리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5년.
최근 책 세 권이 나란히 나왔다. 이들 책의 열쇳말은 기억, 분석, 성찰이다.
(이소마에 준이치 지음, 장윤선 옮김, 글항아리 펴냄).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인 지은이가 참사 직후인 2011년 4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재난 지역을 찾았던 경험을 담았다. 종교인, 기자, 마사지사, 이발사, 제과사, 의사, 택시기사…. 책은 지은이가 만난 이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이자, 숨진 이들에게 올리는 진혼곡이며, 희생자를 필요로 하는 일본 국가 시스템을 향한 냉철한 비판의 결과물이다.
방사능 유출로 우유 출하 길이 막히자 끝내 삶을 놓아버린 한 축산농. 그는 합판에 분필로 유서를 적었다. 마지막 문장이 이렇다. “원전만 없었다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말이 아니라 웅성임으로 흩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끝없이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기록하는 길, 그 고통스런 르포를 멈출 수 없었던 지은이의 전언은 단호하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행복을 손에 넣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헬렌 캘디콧 엮음, 우상규 옮김, 글항아리 펴냄)는 후쿠시마 핵재앙의 의학적·생태학적 영향을 분석한 최신 자료를 담은 20가지 보고서다. 2011년 3월11~12일 미국 뉴욕 의학아카데미에서 열린 심포지엄 발표문이 저본.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전제는 ‘안전한 방사선량’ 따위는 없다는 것. 여기서 출발해야 핵재앙의 위험을 이성의 눈으로 응시할 수 있다.
책 첫머리에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가 등장한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당시 총리였으며, ‘열성적인 원전 반대론자’다. 그의 전언 또한 단호하다. “원전은 과도적인 에너지원에 불과하다. 다음 세기에는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기술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은 핵발전소에 가당치 않다는 게 ‘양심적인’ 과학자들의 결론이다. 핵위기는, 핵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서경식 외 지음, 형진의 옮김, 반비 펴냄). 2013년 봄에서 2014년 여름까지 일본 지역 6곳을 순회하면서 개최한 사진전(정주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현장에서 “‘바른 마음’을 지키느라 애쓰는” 한·일 지식인들이 나눈 ‘갤러리 좌담’을 기록했다. “단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를 넘어 ‘희망’ ‘식민지주의’ ‘연대’ ‘예술’ 등의 문제를 둘러싼 진지한 성찰”이 담겼다.
책 앞쪽에 사진 22장이 실렸다. 두세 장을 빼곤 사람이 아닌 사물만 보인다. 바람소리, 물소리만 있다. 인간은 어디로 갔나. 사진전과 책 발간에 힘을 보탠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 역시 단호하다. “‘원전 세력’(한국의 ‘원전 마피아’)과 정치권의 유착, 그리고 무책임의 구조.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리라고 당초부터 예감은 했지만 5년이 지나고 보니 역시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런 구조는 지금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검찰, 윤석열 ‘조사 없이’ 내란죄 수사 일단락…앞당겨진 재판 시계
법원,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 ‘불허’…오늘 구속기소 전망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영상] 폭동에 맞서 각양각색 깃발 쥔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경호처, “하늘이 보내주신 대통령” 합창 경찰에 30만원씩 격려금
[단독] 서부지법, 윤석열 구속심사 전 경찰에 ‘보호요청’ 했었다
[속보] 경찰, ‘윤석열 체포 저지’ 김성훈·이광우 구속영장 재신청
인천공항 ‘비상’, 폭설 때보다 혼잡…공항공사 “출국까지 3시간”
구속 연장 재차 불허에…윤 변호인단 “즉시 석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