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기의 돌 옛 사랑의 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시 ‘나의 칼 나의 피’ 부분)
여인을 생각하며 시인을 그리워한다. 여인은 박광숙이고 시인은 김남주이다. 1994년 2월13일 마흔아홉 나이 췌장암으로 돌아간 그. 9년3개월 옥바라지를 한 ‘동지’ 박광숙과 마침내 결혼한 남자. 아들의 이름을 ‘토일’(土日)이라고 지은 아버지. 노동자들이 월·화·수·목 일하고 금·토·일은 쉬는 세상을 꿈꾸었으므로 자식의 이름에 새긴 사람. 그리고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라고 노래한 시인.
은 독립운동사·친일반민족사 연구가 김삼웅(73)이 썼다. 여운형·김규식·김창숙·김구·신채호·한용운·전봉준·김원봉·안중근·장준하·조봉암·김대중·리영희·이회영·송건호·노무현·박현채·함석헌·안창호·홍범도·이승만…. 저자가 쓴 평전 목록에 이제 김남주도 들었다. 한 마음을 두 주먹으로 틀어쥐듯 놓지 않는 것. 저자의 집념이다.
김삼웅이 말하는 김남주. “우리 시대 가장 치열하고 가장 격렬하고 가장 순수했던 시인, 누구보다 심장이 뜨겁고 영혼이 맑았던 아나키스트, 세속에 살면서도 속기라고는 없었던 무사기(無邪氣)했던 시인 혁명가, 저항이라는 용어도 모자라 김남주라는 일반명사로 존재하게 된 ‘자유와 해방’의 시인 전사.”
시인은 해방둥이다. 1945년 전남 해남에서 났다. 다만 호적에는 1946년생으로 되어 있다고 저자는 밝혔다. 고등학생 시절 시인은 와 을 탐독했고,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반발해 고교를 1년 남짓 만에 자퇴했다. 스물넷에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프란츠 파농, 막심 고리키 등의 작품에서 압제에 저항하는 비판정신을 벼렸다.
특히 녹두장군 전봉준은 그의 정신에 굵은 척추가 되었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시 ‘노래’ 마지막 부분) 김삼웅은 적었다. “전봉준의 혼(魂)을 닮고, 브레히트의 백(魄)을 닮고자 한 시인이었다.” 광주 최초의 사회과학서점(‘카프카’)을 연 사연, ‘구원의 여성’ 박광숙을 만난 이야기, 투옥 중 담뱃갑 은박지에 녹슨 못으로 500편 넘는 시를 쓴 의지의 상황 등도 들여다볼 수 있다.
무엇보다 시인의 삶을 관통한 것은 감옥이었다. 10월유신 이듬해 반유신투쟁을 위한 지하신문 을 만들었고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극악한 고문을 받았고 옥살이 8개월을 했다.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준비위원회 사건으로 또다시 갇혔다. 그리고 9년3개월. 생전의 투옥 기간만 모두 10년. 해방 뒤 가장 긴 옥살이를 한 시인이다.
책 앞머리에 부인 박광숙이 쓴 글(‘다시 그를 불러내는 사회’)이 실렸다. 왜 다시 김남주를, 어찌하여 거듭 ‘사랑의 무기’를 꺼내야 하는지가 담겼다. “불안을 마케팅하며 정권을 독점하고, 부와 명예, 모든 기득권을 싹 쓸어가려는 자들이 벌이는 음모로 세상은 아수라장입니다.”
저자가 ‘한국 저항문학의 고딕체’로 남을 시라고 한 ‘잿더미’(1974년 등단작)의 한 대목은 또다시 저항의 시대로 퇴행한 2016년 독자를 기다린다. “그대는 겨울을/ 겨울답게 살아 보았는가/ 그대는 봄다운/ 봄을 맞이하여 보았는가/ 겨울은 어떻게 피를 흘리고/ 凍土(동토)를 녹이던가/ 봄은 어떻게 廢墟(폐허)에서 꽃을 피우던가”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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