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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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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공포 시대의 백신

저마다도, 무리지어 있을 때도 아름다운 ‘우리’처럼… 프랑스 파리 테러 현장의 꽃들, 가장 간단하게 이웃과 연대하는 수단
등록 2015-12-03 21:18 수정 2020-05-03 04:28
IS의 테러로 사상자가 발생한 11월13일 이후 프랑스 파리의 카페 ‘르카리용’(Le Carillon)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문 앞에 애도하는 시민들이 두고 간 꽃이 놓여 있다. EPA 연합뉴스

IS의 테러로 사상자가 발생한 11월13일 이후 프랑스 파리의 카페 ‘르카리용’(Le Carillon)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문 앞에 애도하는 시민들이 두고 간 꽃이 놓여 있다. EPA 연합뉴스

나는 사진 속 구멍이 생각보다 작은 것에 조금 놀랐다. 빠르게 날아든 총알이 꽤 두꺼운 유리창을 뚫고 지나간 자리였다. 지난 11월13일 밤 쏟아진 총알은 프랑스 파리 시내 카페 유리창에 여러 개의 구멍을 남겼다. 2014년 6월 이래 이슬람국가(IS) 및 연관 조직은 스무 개 나라의 민간인을 무차별로 공격했다. 그날 밤 파리는 그 스무 개 나라 중 한 나라의 도시였다. 18개월 동안 아프리카·중동·유럽 등지의 나라에서 80차례 이상 IS의 테러 공격이 있었다. 1600여 명이 희생됐다. 나는 그 사이 폭탄과 총격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 흥건한 핏자국을 기록한 사진을 여러 차례 보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꽃이 총을 이긴단다” </font></font>

나는 내가 좀더 잘 아는 도시에 총알이 쏟아졌을 때에야 유리창과 벽에 남겨진 총알 자국을 보았다. 그 작은 구멍을 내고 지나간 총알이 커다란 숨을 쉬고 있던 사람의 맥을 끊었다. 이후 같은 도시에 살고 있던 이들이 몰려와 꽃을 내려놓았고 촛불을 켰다. 몇몇은 총알이 지나간 자리에 꽃을 꽂았다. 프랑스의 한 텔레비전 채널은 어린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를 전송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시민들이 테러에 희생된 이들에게 바치는 꽃이 총을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 유년의 꽃에 대해 생각했다.

1980년대 초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들어간 나는 동네 골목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손에 꼽을 만큼 제한된 몇 가지 놀이로 소일했다. 그중에는 황당한 상상의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도 있었고,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라는 노래에 맞춰 하는 놀이도 있었다.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노래의 놀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학생들이 즐겨 했던 놀이로 기억한다.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양편으로 나눠 선다. 한쪽 아이들이 전진하며 우리 집에 왜 왔냐고 노래하면 반대쪽 아이들은 뒷걸음을 쳐야 한다. 이번에는 뒷걸음치던 아이들이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라고 노래를 이어받으며 앞으로 나선다. 반복되는 전진과 후퇴의 움직임이 이어지는 사이 양쪽은 계속 묻고 답한다. 기억을 더듬어 살피면 놀이는 다음처럼 끝을 맺는다. “무슨 꽃을 찾겠니, 찾겠니?” 상대편 아이의 이름을 꽃 이름으로 하여 지명하고, 그 아이와 가위바위보를 한 뒤, 이기면 꽃(이라 지명된 아이)을 자기편으로 데려온다.

아이 하나하나를 꽃에 비유하니 얼핏 보아 아름답다. 그러나 대개의 놀이처럼 이 놀이도 인간 공동체의 원시적인 운용 방식을 답습한다. 가만 들여다보면 이기고 지는 것이 분명하다. 나아가고 물러서고, 집이라는 영토가 있으며, 겨루고, 뺏어온다. 뺏어오는 대상도 다름 아니라 꽃이다. 편먹기와 침략, 약탈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이 놀이를 즐겨 하던 어린 나와 내 친구들은 놀이의 규칙을 변경하기도 했다. 우리는 꽃 이름을 따서 각 그룹의 이름을 지었다. 우리는 장미와 무궁화를 골랐다. 거의 항상 장미와 무궁화였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를 하고, 고무줄을 할 때면 “무찌르자 공산당, 몇 천만이냐 칠천만”이나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 봉” 노래에 맞춰 폴짝폴짝 뛰던 아이들이었다. 국화(國花)가 아닌 꽃으로 장미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그래도 용했다. 무궁화는 놀이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궁화는 놀이터에까지 있었다. 아니, 무궁화는 실제로 피고 지며, 향이 나는 꽃이라기보다 문양과 국가의 이름으로 도처에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목련의 섬세한 진전을 알아본 날 </font></font>

구한말 이래 민족을 상징하는 꽃이었다는 무궁화는 식민시대에는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정부의 각 부처는 무궁화를 정부를 상징하는 공식 문양으로 사용했다. 애국가를 부르며 학생들은 무궁화가 삼천리를 수놓는 꽃이라고 배웠다. 음악 시간에는 애국가 이외에 나라꽃에 대한 여러 노래를 배웠다.

1983년 전두환 정부가 대대적인 무궁화 보급 운동을 시작했을 즈음 학교에서 나는 몇 번이나 무궁화를 그렸다. 꽃잎 개수, 잎사귀 모양, 꽃술, 무궁화 봉오리까지 하나하나 세밀하게 묘사하고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무궁화를 칠했다. 무궁화는 폈다 졌다 또다시 피는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꽃이라고 했다. 은은하고 아름다운 꽃이라고 했다. 아름다움은 애국적이었고 애국은 무궁화처럼 아름다워야 했다.

그렇게 무궁화에 대해 배우던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상상할 수 있는 첫 번째 꽃 이름은 무궁화일 수밖에 없었다. 진달래나 개나리가 더 흔한 꽃이었지만 무궁화 다음으로 늘 장미를 골랐다. 서양을 배경으로 하는 만화책에 장미가 등장하곤 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은 장미를 주고 사랑을 고백한다고 믿으며 서양의 풍습을 막연히 동경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놀이를 위해 각자 장미와 무궁화 중에서 하나를 택해 편을 갈라야 했다.

나는 자주 무궁화와 장미 사이에서 곤혹스러워했다. 퇴폐나 반역이라는 말은 몰랐겠지만 나는 장미를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편에 속했다. 무궁화 대신 장미가 좋다고 선택하는 아이들이 부럽고도 야속했다. 솔직한 아이들만이 장미 그룹을 선택했다. 무궁화와 장미가 세를 불리려고 싸우는 사이 나는 언젠가 한번 장미 대신 백합은 어떠냐고 말했다가 크게 무시당한 기억조차 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목련꽃을 그렸다. 교화였기 때문이다. 매년 봄이면 한 번씩 교화 그리기 대회에 참여해야 했다. 운동장에 심어놓은 목련 앞에 둘러앉아 목련꽃을 스케치했지만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편이 좀더 흥미로웠다. 매년 발간되는 교지의 표지도 언제나 목련꽃이었다. 목련꽃 사진이거나 목련꽃 그림이었다. 목련꽃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학생의 그림을 표지로 쓰기도 했다. 목련꽃의 우아함을 기꺼이 표현한 그림이나 사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인 명령에 따라 목련꽃을 억지로 관찰해야 했던 고등학생에게 목련꽃은 그저 봄이 오면 피는 매력 없는 하얀 꽃이었다.

목련의 고고한 이상을 숭상하라는 학교장의 명령은 너무 시끄러웠다. 교지 편집부원이 교지의 표지를 백두산 판화로 바꾸었다가 학교장과 보수적인 교사들이 노발대발한 적도 있었다. 찬 바람이 다 가시기 전에 가지에 막 봉오리를 맺는 목련의 섬세한 진전을 눈여겨보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참이 지나서였다. 뒤늦게야 나는 목련꽃에 대한 나의 부당한 편견을 바로잡고 세상을 삼킬 듯이 하얗거나 자주색으로 피어나는 목련꽃의 자태에 감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억울했다. 마치 군대 생활 내내 유통기간 만료가 다가오는 똑같은 상표의 컵라면을 배급받던 병사가 제대 뒤에 다시는 그 컵라면을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오랫동안 다른 꽃처럼 아름다운 목련꽃을 편견 없이 좋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전체주의에 저항하라 </font></font>
지난 11월15일 이슬람국가(IS) 테러 사건이 일어난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극장 근처 리샤르 르누아르 대로에서 시민들이 IS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문구를 분필로 쓰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 11월15일 이슬람국가(IS) 테러 사건이 일어난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극장 근처 리샤르 르누아르 대로에서 시민들이 IS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문구를 분필로 쓰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야 꽃이 되었다는 시 구절은 광고에도 사용될 만큼 유명하지만, 꽃이야말로 이름을 알지 못해도 감탄하며 바라볼 수 있는 사물 중 하나다. 혼주나 상주의 사회적 지위를 도드라지게 과시하는 화환을 보며 꽃 하나하나의 자태에 감탄하는 이는 없다. 우리는 화환 아래에 매달린 리본과 리본에 적힌 글자를 바라볼 뿐이다. 화환의 꽃은 꽃다운 매력을 상실한 꽃이다. 활짝 핀 꽃을 보고 기쁨을 느끼기 위해 꽃말이나 꽃의 애국적 쓰임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이 봄날 멀리까지 가서 구경하는 꽃은 무궁화처럼 공식적으로 대단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 꽃이 아니다.

파리 테러 이후 화제가 되었던 프랑스 부자간의 대화 동영상에서 아이의 아버지는 꽃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집에 대해 말했다. 아이가 아주 나쁜 사람들이 총을 쏘니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어, 이곳이 우리의 집”이라고 한다. 그러고서 아버지는 ‘우리의 꽃’으로 총에 맞선다고 했다. 이 말을 두고 어떤 이들은 동화로 현실의 위협을 회피하는 어리석은 소리일 뿐이라고 훈계했다. 아니다. 꽃은 현실적인 보호 방책이다. 꽃은 가꾸는 것이지만 타인에게 쉽게 선물하는 것이고 꽃은 말을 뛰어넘어 감사를 전하고 사랑의 마음을 고백한다.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은 더욱 협소한 ‘자기 자신만의’ 영토에 스스로를 가둔다. 스스로 갇힌 인간은 어리석게 담장을 쌓고 집을 지키며 모두를 겨냥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아버지가 말하듯 나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꽃으로 함께 추모하는 일은 내 옆에 좋은 이웃과 친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귀함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곳, 우리의 집’은 내 집보다 더 크고 더 열려 있는 나와 내 이웃의 마을이어야 한다. 공포가 창궐하는 시대일수록 ‘간단하게’ 이웃을 만들고 친구를 만드는 꽃이야말로 공포의 전염을 막는 백신이다.

꽃은 저마다 아름답지만 무리지어 형형색색일 때에도 꽃답다. 꽃을 든 시민은 제각각 한 사람으로 존엄하고,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타인의 손을 잡고 어울린다. 형형색색의 꽃은 총에 저항할 뿐 아니라 배타적이고 무자비한 애국주의에 저항한다.

그런데 파리에 무자비한 총성이 울리고 열흘 남짓 지난 11월25일, 프랑스 대통령은 희생자 추모의 날로 정한 11월27일 각각의 집 창에 프랑스 삼색기를 내걸자고 제안했다. 프랑스 국기는 꽤 많은 프랑스 시민에게 국가주의의 상징이다. 국가주의가 군사행동과 애국주의와 지근거리에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프랑스 국기를 앞세우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국기를 매다는 일은 프랑스 국내 축구 리그를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 프랑스 극우정당의 지지자들에게 좀더 친숙한 일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국기의 물결이 꽃을 지우는 풍경 </font></font>

3개월간 연장된 비상사태, ‘국민 단결’의 구호 아래 집집마다 나부끼는 삼색기의 단조롭고 위험한 외침이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던 자리를 가득 채웠던 형형색색 꽃과 같을 수 없다. 삼색기의 물결이 꽃을 지우는 위험한 애국주의의 풍경을 상상하다가 태극기 천지의 ‘금수강산’과 무궁화 노래 일색의 ‘삼천리’가 얼마나 다른 의미의 풍경을 만들어내었던가 질문한다. 저마다 아름다운 들꽃은 피고 지고 또 피는 꽃 중의 꽃 무궁화만큼, 무궁화보다 더 귀한데도.

이나라 이미지문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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