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내가 부모 말을 잘 듣지 않거나 고집을 부릴 때면 내 부모는 당시의 다른 부모들처럼 다리 밑에서 나를 주워왔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서울 잠실에 살았던 탓에 늘 잠실 다리가 입양 장소가 되었다. “잠실 다리 밑에서 널 주워왔지. 잠실 다리 밑에 네 친엄마가 살고 있어.” 야단을 칠 때마다 잠실 다리가 등장했다.
네 살, 다섯 살, 머리가 커가면서 강물이 흐르는 잠실 다리 밑에는 아무도 살 수 없다, 다리 아래가 나의 고향이 될 수 없다며 나름의 대항 논리를 폈다. 그 모양이 재미있었는지 아버지는 약주 한 잔에 기분이 좋을 때도 잠실 다리 이야기를 꺼내어 내 약을 올렸다. 아동이 경험할 심리적 스트레스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네댓 살 꼬마에게 이런 농담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겠지만, 별다른 경험이나 전문가의 충고 없이 아이를 키웠던 내 부모님은 반복해서 이 농담을 했다.
한번은 외식을 마치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강 다리 근방을 지나면서 또 다리 밑에 살고 있는 친부모 이야기를 꺼냈으니, 나는 저 어둠 속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기를 쓰고 대들었다. 아버지는 성냥불을 켜서 깜깜한 다리 아래로 던지고는 “그래, 네 말이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어린 나는 승리감을 맛보았다. 한강 다리 위에서 담판을 짓고 나서야 부모의 놀이는 끝났고 아이는 안도했다.
상징과 상상력을 제안하는 장소
1970년대 말 내 유년의 다리는 이처럼 버려진 아이들의 장소였지만 다리는 세계인에게 더 많은 상징과 상상력을 제안하는 장소다. 다리는 때로 아찔함을 상상하게 한다. 영화 에 등장하는 정글 속 다리나 모험과 훈련을 혼합한 놀이시설이면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출렁이는 다리가 그렇다. 이 다리들은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까딱 잘못하면 중심을 잃고 추락할지도 모른다. 언제 끊어지거나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다리는 위험천만한 감각을 불러온다.
반면 철과 콘크리트, 신소재를 사용하여 지은 근대의 다리는 인간의 유한함을 뛰어넘으려는 바벨탑같이 도도한 경관을 구축한다. 그런데 단단하게 지어져 높이 솟은 다리조차 교각 아래 은밀함과 비참함의 공간을 감추고 있다.
김기덕이 처음 만든 영화 (1996)는 한강 다리 밑에 기거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남자는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 이들의 시신을 건져 생계를 유지한다. 영화에서 가족을 갖지 못한 이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면서도 교각 아래에서 뒤엉켜 살아간다.
보다 몇 해 먼저 만들어진 프랑스 영화 (1991)도 지붕 없는 파리의 교각을 배경으로 했다. 영화 속 연인은 보수공사를 위해 폐쇄된 교각 퐁네프 위를 집으로 삼는다. 영화 속 다리와 센 강변은 마냥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다. 깨진 술병이 나뒹굴고 범죄와 폭력이 위협하는 누추하고 위험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시력을 잃어가는 여인과 그녀를 사랑하는 노숙자가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지붕 없는 다리 위에는 자유의 기미가 있다.
지난 여름밤 프랑스 파리 센 강변을 걷던 나는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식 건물 아래를 지나쳤다. 옛 강둑 화물 적재소를 개조한 건물은 과감한 디자인과 야외로 개방된 발코니 카페 등으로 파리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강둑에 앉은 사람이 몇 보였다.
이내 나는 건물 계단 아래쪽에 빽빽하게 들어찬 수백 개의 텐트와 마주쳤다. 텐트 사이사이에 이민자들이 웅성이고 있었다. 주로 수단과 소말리아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라는 것은 후에 알았다. 2년 이상 텐트 생활을 한 이민자부터 막 도착한 이민자까지 도합 400여 명의 이민자들이 프랑수아 미테랑 다리 옆, 강 언저리의 텐트 속에서 삶을 견디고 있었다.
강둑 위 첨단 건물 테라스에는 스크린이 걸려 있었고 무슨 영화가 상영되었다. 강둑 위 테라스에서 외출한 청년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민자들, 스스로를 유배한 적 없는 이들, 다리 위 세계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다리 아래 강둑에서 웅성이고 있었다. 지난 세기의 빈민이 아이를 유기했던 교각 아래에 지금도 여전히 숨을 고르며 움츠리고 있는 어떤 삶의 의지와 꿈이 있었다. 때로 망각되고, 감춰지고, 유기되는 꿈이 있었다. (2015년 9월 파리시와 비정부기구의 도움으로 이곳에 머물던 난민들은 여러 난민 수용시설로 분산 수용되었다.)
다리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처럼 지리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분리된 두 지대 사이에 있고, 판문점의 “돌아올 수 없는 다리”처럼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두 영토 사이에도 있다. 불교 사찰 입구의 돌다리는 세속세계의 범인을 성스러운 세계로 진입하게 하는 상징적인 ‘이행’의 장치다. 견우와 직녀는 일 년에 한 번 까마귀와 까치의 선의가 만든 오작교 위에서 만난다. 이내 사라지는 오작교라는 다리의 속성은 헤어져 살아야 하는 두 연인의 비극적 운명을 강조하고 만남의 긴장감을 드높인다. 오작교는 분리의 상태야말로 일상적이며 분리된 세계의 존재자가 서로 조우하거나 연결되는 일이야말로 예외적인 사건이라는 점을 입증한다.
두 세계가 대결하는 긴장의 공간어떤 다리는 분리된 지대에 존재했을 개성과 고유성을 파괴하고 두 지대를 수직적인 관계로 재편한다. 도서 지역을 육지와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서해대교나 남해대교는 물자의 교역을 도왔을 테지만 짧은 시간에 섬의 문화적인 특징을 소거했을 수도 있다. 자기 문화의 고유성을 잃은 섬의 가치는 이제 육지와 얼마나 편리하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경제적 가치와 등가적인 것이 된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세계가 서로 적대할 때 다리는 게다가 불길한 통로이거나 대결의 장소가 된다. 영화 의 도입부, 중년의 회사원이 다리 교각 위에서 뛰어내린다. (한국 영화는 다리 위에서 밤하늘의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낭만적인 연인을 상상하기보다 죽음을 상상한다. 에서도 사회의 폭력성에 신음하는 주인공들이 다리 교각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강을 바라보거나 강 속으로 뛰어든다.) 생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 교각 아래로 몸을 던질 때 교각 아래에 살던 돌연변이 괴물은 다리를 타고 기어오른다.
괴물이 자라는 물속 세계와 물 바깥이라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공간 사이에 다리가 있다. 사람들이 마른 오징어 다리를 뜯으며 맥주를 마시는 뭍의 세계는 정상성의 세계다. 바깥(물속)의 비정상성이라 할 괴물이 다리를 타고 우리 세계를 ‘침범’한다. 인간의 세계와 괴수의 세계를 가르고, 다시 인간 세계 내에서 가족의 세계와 적의 세계를 갈랐던 에서 다리는 분리의 시각적 기호다.
정치적 적대를 선과 악의 대결로 환원하여 다루는 스파이물 역시 다리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한다. 가령 두 적대국은 다리 위에서 만나 스파이를 교환한다. 2015년 개봉한 스파이 영화는 심지어 (원제 ‘Bridge of spies’,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지구인과 외계인의 만남을 그린 (1977),
어이없이 무너졌던 근대의 다리
근대적 공법으로 지어올린 한강대교와 한강철교는 20세기 초엽 모더니티를 대표하는 풍경이기도 했다. 다리와 모더니티를 연결하는 상상은 1970년대 혹은 80년대까지 이어진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유행가는 한강 양안을 잇는 다리의 이름을 언급하며 도회적인 감각을 표현하고자 했다.
1979년 인기가수 혜은이가 부른 라는 디스코 곡의 가사를 보자. 20세기 초엽 프랑스 시인은 센강이 미라보 다리 아래로 흐른다고 노래했고 혜은이는 한강이 제3 한강교 아래로 흐른다고 노래했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 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라는 노랫말, 근면 성실한 청춘 대신 “갈 곳을 모르는 채 이 밤을 맴”도는 청춘을 노래하고 지고지순한 순정 대신 “어제 처음 만나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하나가 되었다”가 첫차를 타고 헤어지는 도시의 연인을 이야기하는 노랫말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리만큼 현대적이었다. (이 곡의 노랫말은 군사정권의 검열로 일부 변경된다.)
1985년에는 영화 의 동명 주제가가 꽤 인기를 끌었다. 곡은 “너를 보면 나는 잠이 와/ 잠이 오면 나는 잠을 자(…)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보여/ 창밖에 사랑이 보인다”라는 나른한 가사와 멜로디로 유명했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한강 다리는 더 이상 모던함의 상징이 아니다. 2014년 인기를 얻은 곡 에서 는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건너야 하는 힘겨운 삶의 장소를 의미한다.
근대인들은 근대의 산물이 비인간적인 인상을 심어주더라도 기계적인 정확성과 효율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징검다리나 목조다리와 비교할 수 없이 튼튼한 근대의 다리 역시 그랬다. 단단하리라 믿었던 다리는 그러나 어이없이 무너졌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3일 만에 남한 군당국이 폭파한 한강 다리가 그 하나다. 이들은 적의 진군을 막는다며 피란민들로 메워져 있던 한강대교를 예고방송도 없이 폭파했다. 아군에 의한 급작스러운 다리 폭파로 적어도 수백의 시민이 폭사하거나 익사한 사연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리고 끊어진 한강대교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국가권력의 책임 방기를 뜻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1994년 어느 날 출근시간 성수대교가 50m의 틈을 만들며 두 동강 났다. 한반도 전쟁의 어떤 이미지가 남한 사회의 일상의 이미지와 겹치는 순간이었다.
살 만한 세계는 어디인가
센강 다리 아래 이곳저곳에는 여전히 노숙자가 거주한다. 한강 다리 아래 대부분의 그늘진 공지에는 깔끔하게 단장한 근린 체육시설이 있다. 회색 교량 아래에서 대체로 연로한 근방의 주민들이 회색 운동기구 위에 올라 열심히 허리를 돌리며 체력을 단련한다. 센강 다리 위에서 연인은 키스한다. 한강 다리 위에서 젊은이는 강물을 내려다본다. 살 수 없다고 말한다. 건강한 신체와 깨끗한 거리가 살 만한 세계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미지문화 연구가
이나라 이미지문화 연구가
* ‘이 나라의 풍경의 감각’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원고를 보내주신 이나라씨와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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