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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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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밥을 지어 제각각 먹방을 찍고

밥보다 더 많은 것이 담긴 ‘밥상의 풍경’… 음미와 취향, 오락의 대상 된 밥상, 아무리 휘황찬란하여도 보살핌의 풍경으로는 보이지 않네
등록 2015-06-06 20:17 수정 2020-05-03 04:28

외국에서 공부할 때 몇 년에 한 번 한국에 들르면 가장 긴급한 일은 지인들과 밥 약속을 잡는 일이었다. 모두들 “밥이나 한번 먹자”고 했다. 밥 대접과 차 대접, 밥상과 술상 사이에는 우정과 친밀성의 위계서열 같은 것이 있다. 가까운 친구나 지인은 차를 사거나 저녁 대신 점심을 사면 자신들의 선의와 우정, 윗사람의 도리를 증명하지 못한 듯 여기며 미안해했다.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을 한국 음식을 필히 사주겠다는 고마운 이가 많았다. 엄마나 친구, 친척, 동료들 모두 한결같이 (남의 나라에서) 먹고 싶은 것이 없었는지, 밥은 제대로 먹었는지 물었다. “맛있는 것” 사준다는 공언은 대체로 의심할 바 없는 애정과 관심의 징표다.

“밥 먹었니” “밥이나 한번 먹자”

연출된 요리의 미장센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환호를 얻어내는 듯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먹을거리 사진이 가득하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연출된 요리의 미장센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환호를 얻어내는 듯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먹을거리 사진이 가득하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한국 사람들은 옷도 집도 다 쉽게 내던지고 포기하지만, 음식만은 쉽게 버리지 않는다. 유독 그렇다. 아프리카 출신의 꽤 많은 유럽 거주 이민자는 음식은 쉽게 바꾸어 먹어도 옷차림은 바꾸지 않는다. 주말 교회에 갈 때면 커다란 원색의 호랑이나 야자수가 그려진 전통의상을 차려입는 이가 많다. 말하자면 한국 사람에게 밥을 먹는 일은 소비생활의 핵심인 동시에, 단순한 소비생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밥을 음미하는 미식가도 늘어났다. 이들이 기록하는 음식 사진은 신묘한 자태의 고양이 사진만큼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자들의 이목을 끈다. 냉면 면발의 쫄깃함이나 네모난 쟁반 위 연출된 ‘요리’의 미장센은 ‘먹을거리’ 사진의 홍수에 피로감을 표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의 환호를 이끌어낸다. 음식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음식 사진 바깥의 맥락-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람, 음식을 함께 나누는 사람- 보다 프레임 안의 음식 자체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그릇에 담긴 음식 사진에 피로감을 표하는 이는 먹을 것이 싫다기보다, 먹을 것을 담은 사진의 프레임이 너무 좁다고 느낀다. 이 프레임 바깥의 풍경이 궁금하다. 스타 셰프 예능이나 캠핑하며 끼니를 해결하는 예능 역시 프레임 바깥을 보여준다는 ‘착각’을 만들며 인기를 끌지 않는가. 여하튼 밥상의 풍경에는 밥보다 더 많은 것이 담긴다.

음식은 많은 경우 음식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가령 유럽의 초기 기독교 교회 신도들은 모임에서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며 집에서 빚어온 빵을 먹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서로 빵을 삼키는 것을 보며 예수의 사랑으로 평안하게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빵의 상징적 의미는 함께 모여 먹으며 생겨났다. 9세기가 되면 신도들은 더 이상 스스로 빵을 만들지 않는다. 사제들이 수도원에서 신도들이 먹을 빵을 만들었다. 오늘날은 이조차 만들지 않는다. 미사 시간에는 밀전병이 빵을 대신한다. 신도들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밀전병 조각을 녹이며 이를 예수의 몸이라 여긴다. 가톨릭 성당의 관행과 달리 유대인들은 지금도 박해받던 시기에 먹던 빵(‘마초’)을 의례에 사용한다. 쫓기며 떠돌아다니던 시대에 유대인 공동체는 빵을 구울 오븐이나 빵을 발효시킬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 때문에 유대인은 발효 과정이 필요 없는 빵 ‘마초’를 만들어 먹었다. ‘마초’에는 디아스포라의 기억이 서려 있다.

우리도 적지 않은 음식에 상징성을 부여한다. 견주고 경쟁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공동체의 풍습은 먹을 것과 관련된 것이다. 생일에 장수를 기원하는 국수를 나눠 먹거나 보름날 부럼을 깨는 풍습 같은 것. 거창한 결혼식장에서 하객의 식대와 부조금을 더하고 빼며 비교하는 산술계산이 지나치게 노골적일 때 마음이 불편한 까닭도 이와 관련 있다.

공동체 풍습은 죄다 먹을 것과 관련돼

빵의 사례가 알려주듯 상징성은 음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행위에서 생겨난다. 우리 문화에서 음식은 나눠 먹거나 권세를 표시하는 수단이라기보다 우선 돌보는 수단이었다. 잘 차린 밥상은 먹을 것을 음미하거나 예의를 지키며 사교하는 자리라기보다 대접하는 자리, 돌봄의 자리였다. 음식만큼이나, 음식을 마련하고 밥상을 차렸던 이가 밥상의 의미를 만들었다. 조촐하거나 거창한 결혼 피로연에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점심을 먹고 ‘대접’과 ‘돌봄’의 의미를 반추하는 사람은 드물다. 결혼식의 값비싼 식대를 누누이 강조하는 혼주의 관심은 손님 대접이 아니다. 유행하는 ‘수제’ 요리는 음식에서 솜씨 못지않게 정성이 중요한 일이라고 웅변한다. 막연한 ‘손’의 정성이 아니라 내가 밥상에 마주하고 앉은 이의 정성이 요리의 의미를 바꾼다.

밥보다 잠이 고파 짜증을 내는 아침 밥상의 손주에게 할머니는 묻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이 뭐라고?” “손주 입에 밥 들어가는 거 보는 거.” 소년은 자동으로 답을 하며 숟가락을 든다. 동료 학생의 집단 성폭행에 연루된 손주를 둔 할머니의 이야기, 영화 의 한 대목이다. 밥상은 내 앞의 사람이 먹는 것이 내가 먹는 것보다 더 기쁜, 네 몸과 내 몸이 거의 하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감응하는 장소다.

다른 무엇보다 음식으로 보살피고 감응했던 한국에서 단란한 저녁 밥상은 거의 상상 속의 것이 되었다. (우선 이 나라 사람들이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했던 탓이다.) 사람 사는 곳, 일하는 곳, 뜨는 곳이면 어디든 식당이 제일 먼저 들어섰다. 그리고 봄철 꽃 피고 지듯 사라진다. 우리는 가족 대신 친구·동료 등 유사가족과 함께 식당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동네 밥집의 텔레비전에도 함께 둘러앉는다. (김치 대신 피클을 주는 식당은 텔레비전 대신 진열용 책장 인테리어를 마련하기도 한다.) 제일 먼저 집 밖의 식당이 필요했던 이들은 유산계급이 아니라 하루 종일 집에 돌아갈 수 없었던 노동자였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점심시간에 집에 돌아갈 시간이 없던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이 서비스를 구매하며 ‘손님’이 되었다.

식당의 손님은 자신이 구매한 서비스로 타자를 돌보기도 한다. 자신의 끼니를 챙기려, 거래처 직원을 대접하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려, 단합을 위해, 총알처럼 카드를 긋는 일도 어떤 의미에서는 돌보는 일이다. 업무의 연장선이기도 한 회식이 비일비재한 한국 사회에서 식당은 여전히 진정하거나 가장된 돌봄과 우애의 장소다.

할머니를 대신하는 TV 속 셰프
음식으로 보살피고 감응했던 한국에서 단란한 밥상은 상상 속의 것이 됐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 한겨레 곽윤섭 기자

음식으로 보살피고 감응했던 한국에서 단란한 밥상은 상상 속의 것이 됐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 한겨레 곽윤섭 기자

시청자 역시 손님 소비자다. 인기 있는 요리·먹기 프로그램에서 진정 시청자 손님의 즐거움을 이끌어내는 것은 출연진의 요리 솜씨가 아니다. 대개 인기 프로그램은 요리 이상의 이야기로 승부한다. 한국의 요리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유독 자주 카메라 앞에서 만들고 있는 음식을 한술 떠서 다른 출연자에게 먹인다. 보살핌의 밥상을 갈구하는 시청자는 음식을 떠먹이고 남의 집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주는 출연자에게 열광한다. 화면 속 인물이 밥상머리에 앉아 밥 먹는 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할머니를 대신한다. 물론 화면을 가로지르는 감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부슬비 내리는 어느 일요일 늦은 점심, 동네의 유명한 국숫집에서 매운 국수를 먹었다. 천연 재료로 맛을 냈다는 얼얼한 비빔국수를 삼키던 나는 점잖은 행색의 할머니 한 사람이 국수를 다 들고 계산대로 다가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일요일 점심 한강변 국숫집에서 국숫값을 계산하는 할머니의 고운 얼굴과 단정한 핸드백은 갑자기 슬로모션으로 나의 시선을 잡아끌고 내게 1만5천원쯤 하는 고기와 몇천원의 와인을 들이켜던 프랑스 파리 골목길 식당의 할머니 이미지를 복기시켰다.

일요일 점심, 잘 차려입거나 식당에 가는 일은 프랑스 사람들의 오래된 습관 중 하나다. 주로 평범한 동네의 서민 식당이나 전통에 충실한 구식 레스토랑들은 여전히 일요일 점심 특별 메뉴를 선보인다. 젊은이들이 붐비는 핫플레이스의 식당은 일요일 점심이면 미국 뉴욕 스타일의 브런치 메뉴를 선보이는 편이니까. 일요일 이른 점심이면 서민 식당에서 혼자 쇠고기 스테이크나 생선 요리를 먹는 노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두셋이 어울려 먹는 경우도 있지만 혼자 오는 이도 적지 않다. 혼자 사는 노인이 많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파리 시내 번화한 곳 바로 뒷골목의 작은 식당에서 마주쳤던 할머니는 검정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천천히 그리고 열심히 고기와 와인을 들었다. 연신 주위를 살피며 지나는 손님에게도 웨이터에게도 한두 마디씩 건넸다. 거리의 악사가 들어와 연주하자 자신도 젊은 시절 가수였다며 노래를 불렀다. 웨이터가 웃고, 악사가 장단을 맞췄다. 대개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일요일 식당에서 ‘스스로’ 점심을 대접할 때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투피스를 갖춰 입는다. 세련됐다는 소리가 아니다. 이들이 다른 사람의 이목을 의식한 옷차림을 하는 것은 여전히 사회 속에 속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웨이터가 가져다준 고기를 천천히 썰며 자신들이 여전히 세상 속에 있다고 자부한다. 노인은 손님이었다. 일요일 점심 식당에서 나는 외롭더라도 빈곤하지 않은 노인이 세상에 속하는 방식을 보았다.

반도 곳곳에 좋은 식당이 없는 곳이 없다. 식당과 ‘먹방’이 늘어나는 동안 혼자 손수레에 종이 뭉치를 싣고 있는 할머니나 놀이터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할머니도 늘어났다. 혼자 사는 할머니는 보통 열렬한 텔레비전 시청자다. 할머니들이 어떻게 밥을 먹을지 상상할 수 없으나 식당에서 자신에게 밥을 사는 반도의 할머니 모습은 너무 낯설다. 손수 소문난 동네 국숫집에서 3500원 국숫값을 계산하는 할머니는 그렇게 낯설었다. 이는 한편으로 절대적으로 빈곤한 한국 노인 인구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빈곤이 모든 까닭은 아니다.

소문난 국수집, 낯선 할머니

반도에서 밥상이 중요했던 까닭은 밥상의 풍경에 밥으로 돌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밥상은 이제 음미와 취향, 오락의 대상이 되었다. 애초에 밥상의 윤리를 실천했던 이들은 우리가 손님이 되어 보살핌을 가장하는 사이, 멀뚱멀뚱한 시청자가 되었다. 화면 속 밥상의 풍경이 아무리 휘황찬란하며, 함께 먹는 일을 선전해도 보살핌의 풍경으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다. 보살핌은 사회가 존재하는 요건이다.

이나라 이미지문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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