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세 번 야근을 하는, 네 살 남자아이를 둔 워킹맘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이 시간을 조정해 아이를 보느라, 주중 저녁에는 야근 아니면 아이돌봄을 하느라 부부 모두 쉴 틈이 없습니다. 문제는 주말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아이가 기린과 사자를 보고 싶다고 해서 에버랜드를 다녀왔습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집에서 편안히 쉬고 싶지만 아이는 집 안에서도 뛰기만 하는 ‘에너자이저’입니다. 게다가 밀린 집안일까지 하고 나면 다시 또 월요일이 밝아옵니다.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는 도대체 언제 쉴 수 있는 건가요? 아이가 몇 살이 되면 쉴 수 있나요? (은평 피곤맘)
딸이 4살, 아들이 2살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토피 증상이 있던 둘째가 온몸을 벅벅 긁으며 밤새 울어댔습니다. 딸은 밤마다 엄마 머리카락을 만져야만 잠이 온다고 ‘뗑강’을 부렸지요. 주말마다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첫째는 주말엔 엄마와 함께 놀러가고 싶어 했지요. 회사 일은 많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 돌보기부터 집안일까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많은 역할을 강요받지?’ ‘왜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이렇게 고생하지?’ 밤마다 ‘왜, 왜, 왜?’라는 물음표가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중 장 보러 마트에 갔다 서점에 들렀는데 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와 ‘일’ 사이에 끼여 ‘나’란 존재를 느낄 수 없는 삶에서 그 책 제목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을 주었지요. 서점 한쪽 구석에 앉아 비련의 주인공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책에서는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이 많다”며 좋은 엄마 콤플렉스나 희생자 모드에 빠진 엄마들이 왜 불행한지 말해주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가 저도 모르게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모든 욕구를 만족시켜줘야 한다는 제 생각이 저를 더 힘들게 하고 있었지요. 어느새 저도 ‘희생자 모드’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고통 없는 사랑이란 없는데, 부모 노릇의 힘겨움을 희생이라고 단정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때부터 저는 아이의 모든 욕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내가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도 지웠습니다. 몸이 너무 힘들면 아이에게 “엄마가 오늘은 힘들어. 그냥 집에서 놀자”고 말하고 거실에 벌러덩 누워 뒹굴거렸어요. 아이에게 텔레비전도 보여주고 옆에서 잠도 잡니다. 집 안 정리를 말끔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어요. 아들 병원에 항상 남편과 함께 갔는데, 몸이 힘들면 남편 혼자 아이 데리고 다녀오라고 하고 집에서 쉬었습니다.
아이가 기린과 사자를 보고 싶다고 해도, 내 몸이 너무 피곤하면 집에서 그냥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림책이나 영상으로 기린을 보여주고, 내 컨디션이 좋을 때 동물원에 가도 됩니다. 남편 컨디션이 괜찮다면 남편 혼자 아이 데리고 다녀오라고 해도 되는 것이죠. 혹시 내가 아이 욕구를 다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지 한번 돌아보세요. 또 남편과 가사·양육 분담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세요. 아마 피곤맘님께서 더 하고 있을 겁니다. 아이 목욕, 책 읽기, 몸 놀이, 놀이터 가기, 알림장 확인, 아이 책 구입, 청소, 빨래, 요리 등등 가사·양육 리스트를 구체적으로 적고 남편과 제대로 분담하는지 확인해보세요. 내 행복과 재충전을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 잊지 마세요. 아이만큼 나도 소중하니까요.
양선아 삶과행복팀 기자 anmadang@hani.co.kr*여러분, 워킹맘 양 기자와 육아 고민 나누세요. 전자우편(anmadang@hani.co.kr)으로 고민을 상담하시면 됩니다. 이 글은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도 동시 게재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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