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은 대부분 글쓰기에 서툴다. 밋밋하고 건조하다. 글이란 게, 더러 맺혔던 감정이 만두소 터지듯 삐죽 비집고 나오기도 하고 모난 구석을 좀 드러내곤 해야 맛깔스런 법이거늘. 균형을 강조하는 경제학적 사고 훈련을 지독히도 받아서였는지는 몰라도, 경제학자들은 무리수나 파격을 좀체 용납하지 않는 유전자(DNA)를 지녔다. 경험칙이다.
그래서일까. 눈앞의 질서와 불화하고 그로부터 일탈하는 경제학자의 글과 만나는 건 묘한 쾌감마저 안겨준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경제학자 이상헌이 그런 사람이다. 학창 시절 문학도를 진지하게 꿈꿨을 정도로 문학의 피가 흐르는 이 경제학자는 20여 년의 외국 생활 동안 켜켜이 쌓인 ‘바람기’를 오래전부터 묵묵히 글로 풀어내왔다. 감성의 미세한 떨림은 살리면서 균형과 논리의 중저음도 함께 지닌 그의 ‘잡설’은 그간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람들 곁을 분주히 떠다녔다. 그의 말대로 “낯선 언어로 살아가는 떠돌이 생활”의 바람기는, 얼마 전 국내 독자들에게 정식으로 배달됐다. 에 연재했던 글 등 44편을 모아 (생각의힘 펴냄)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묶어낸 것.
‘일터’와 ‘사람’, ‘경제학’으로 각각 나뉜 세 개의 장은, 그가 평생 붙들고 있는 화두이자, 누가 뭐래도 그의 주특기 분야다. 책에 실린 44편은 하나같이 길지 않은 분량의 글이지만, 묵직한 울림을 안겨준다. 사례 몇 편만 추려보자. 국적 항공기와 외국계 항공기 탑승 체험을 나란히 비교한 글(‘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에선 우리가 자주 망각하는 ‘소비자-노동자’의 이중적 삶을 잘 짚어낸다. 스웨터를 만드는 공장의 ‘인간 스웨터’ 이야기도 흥미롭다. 여기서 인간 스웨터란 소매상이나 도매상으로부터 옷 주문을 받아 노동자들에게 다시 하청을 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인간 스웨터가 짜낸 노동자의 땀이 스웨터 옷을 대중화하는 데 큰 몫”을 한 비극은, 최저임금제도가 시장을 교란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낯익은 주장을 반박하는 사례로 등장하기도 한다.
‘기억을 위하여’란 타이틀을 단 마지막 장에 실린 글들은 읽는 내내 코끝이 찡해졌다. “기억하고자 쓴 글인데 다시는 읽고 싶지 않은 글”이라는 저자의 고백이 새삼 떠올랐다.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편의 글. 3년 전, 스승의 칠순을 맞아 썼던 글(‘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진보한다’)은 그만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제자에 대한 스승의 애틋한 사랑에 감사를 표한 글이었으나, 책이 출판된 지 일주일 만에 스승의 황망한 죽음 소식이 세상에 전해졌다. 이국땅에서 슬픔에 젖어 있을 저자에게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의 출판과 함께 잠시나마 ‘휴가를 떠났을’ 바람기가 가을바람에 춤추는 꽃처럼 조만간 다시 흩날리길 벌써부터 독자로서 내심 기대해본다. 맞다. 은근한 압력(?)이다. 날카로움과 따뜻함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걸, 외려 값진 화학작용을 일으킨다는 걸, 그만의 레시피로 증명하는 맛깔스런 후속작을.
최우성 논설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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