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문학인들이 한국문학이 조롱거리(스캔들)로 전락한 것에 대해 참담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조롱거리가 된 현실이 아니라 그런 현실을 참담하다고 느끼는 반응이 아닐까 한다. 따지고 보면 한국문학의 참담함은 시작부터 존재했다. 불과 반세기 전인 1955년 김윤식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 국문과는 존재했지만 한국문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1960년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논문을 쓸 때도 그를 지도해줄 한국문학 전공교수는 한 명도 없었다. 당시는 ‘사방이 황무지인 청동시대’로 석사 학위만 대충 받고 모두 교수로 나가던 시절이었다. 이때 그가 홀로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마주한 것이 바로 임화의 ‘이식문학론’이었다.
“한국문학(=근대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임화는 ‘일본문학이 이식(移植)된 것’이라고 답했는데, 이를 반박할 수 없었던 김윤식으로서는 실로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내재적 발전론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김용섭의 (1970)가 출간되자 이에 흥분한 그는 김현과 함께 한국문학의 기원을 무려 영·정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1973·사진)를 집필한다. 그리고 정년까지 100권이 넘는 저서를 쉴 새 없이 써감으로써 한국문학을 자랑스러운 독립적 문학으로 실체화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수많은 문학교육자와 비평가도 충분히 양성한다.
하지만 2000년 표절 논란에 휘말리면서 그가 임화에게서 발견하여 부정하고자 한 현해탄 콤플렉스로부터 그 자신도 자유롭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해탄 콤플렉스란 제도적 장치(양식)가 의식을 결정짓기 때문에 의식의 독자성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문학의 제도적 장치는 일본에서 온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현해탄 너머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비판자에 따르면 김윤식에 있어 현해탄 콤플렉스란 극복된 것이 아니라 억압된 형태이지만 줄곧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 된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오늘날의 김윤식을 만든 것이 바로 그 현해탄 콤플렉스가 아닐까 한다. 해방 이후 일본(문학)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외면하거나 서구 이론을 들여와 떡칠을 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남긴 성과물의 초라함과 비교했을 때 더욱 그렇다. 그 때문일까, 퇴임 뒤 김윤식은 자신이 평생 구축한 한국문학이라는 성(城)이 ‘사명감이 만들어낸 허구’일 수 있다고 고백하면서 내심 홀가분해하는데, 최근 한국문학가들이 이야기하는 참담함이란 그저 이 성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제도적 신앙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신앙과 콤플렉스는 양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콤플렉스가 없으면 바깥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위상 같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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